자원 아끼고 악취도 쫓아내고… /쓰레기 분리수거 주부들이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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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조금만 애쓰면 깨끗한 환경 되찾아”/6천여가구 70%가 호응/쓰레기투입구 밀봉… 일손 던 청소업체도 환영/서울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29일 오전9시 서울 오륜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학생과 직장인들의 출근행렬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각 아파트 입구마다 검은색 비닐봉지를 든 주부들이 쏟아져 나온다.
쓰레기 적치함옆 대형 플래스틱통에 봉지들이 쌓이자 녹색 트럭이 나타나 「젖은 쓰레기」와 「마른 쓰레기」로 구분돼 있는 플래스틱통을 번쩍 들어 익숙한 솜씨로 적재함에 쏟아 넣는다.
도시생활에서 우리가 매일 겪으면서도 별 생각없이 패배를 자초하는 쓰레기전쟁.<관련기사 17면>
그러나 이 아파트단지는 흉물스럽고 처지 곤란한 쓰레기와의 전쟁에서 매일 아침 조용히 승리를 거두고 있다.
『처음엔 단순히 악취에서 해방되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한때 통장일을 맡았던 223동 임행규씨(41ㆍ주부)가 쓰레기 분리수거를 착안한 것은 7월초.
여름철이 되자 적치함에 쌓인 음식물 찌꺼기 등 오물이 썩으면서 진동하는 악취와 해충들이 통로를 통해 각 가정으로 스며들었다.
아파트 주민들,특히 주부들은 가정에 있는 시간이 많아 고통받는 시간이 길면서도 『으레 그러려니』하고 손을 쓰지 않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쓰레기를 음식물과 가연성으로 나누어 직접 들고 내려가 버립시다.』
임씨는 8월1일 임시반상회를 열어 주부들을 설득했다.
필요성을 절감했던 주부들은 임씨의 제안에 동조했고 쓰레기투입구를 아예 테이프로 봉해버렸다.
또 각 가구마다 얼마씩 돈을 거둬 대형 플래스틱통 4개를 구입,「건식」과 「습식」통으로 구분했다. 쓰레기 적치함은 세제를 풀어 깨끗이 씻어냈다.
집안이 한결 깨끗해졌다.
쓰레기와는 별도로 모은 빈병은 아파트 청소원들이 수거,부수입으로 생계에 도움을 줄수 있었다.
223동의 승전보는 곧 반상회와 반장회의를 통해 이웃 동으로 전해져 분리수거가 급속히 번져갔다.
이 아파트 3개단지 1백20개동 6천6백53가구가 하루 버리는 쓰레기는 8t트럭 9대분인 69t가량.
현재 전체 동의 70%인 80여개동이 분리수거에 참여하고 있다.
『분리수거를 시작하고 보니 전에는 5일에 한번씩 수거해가던 청소대행업체에서 매일 수거해가기 때문에 항상 주위가 깨끗해졌어요.』
1단지 박덕남씨(39ㆍ여)의 말.
온갖 오물이 뒤섞인 쓰레기더미를 헤쳐 습식과 건식,빈병ㆍ깡통 등을 일일이 분류한뒤 트럭에 싣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20분.
반면 분리수거에 걸리는 시간은 불과 3분도 안걸리는데다 트럭의 적재량은 더 많고 청소원들의 작업량이 줄기 때문에 자주 수거해갈수 있게된 것이다.
『주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수거후에는 물청소를 해주고 있어요.』
이 일대 쓰레기수거 대행업체 방산실업 대표 김치정씨는 분리수거만이 청소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확신을 얻게 됐다고 했다.<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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