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자녀 학교생활-적응기간 6개월이"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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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외교관·해외파견 공무원·일반 기업체 해외지사 직원들이 귀국 후 맨 먼저 겪는 어려움이 자녀교육 문제다.
중·고교생의 경우 학교배정을 제대로 받기 힘든데다 특히 어린이·청소년들은 수년간 외국생활로 인한 학업결손을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고 갑자기 달라진 주변환경에도 쉽게 적응치 못해 낙오의 패배감에 빠져드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실태=83년4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미국 뉴욕에서 근무했던 공무원 박모씨(46·서울 대치동)는 『귀국 후 자녀교육문제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고교1학년인 딸을 집 근처학교에 보내려 했지만 귀국자자녀 입학정원(전체정원의 1%)이 모두 차있는 바람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에 배정을 받았어요. 게다가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선생님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겠다며 다시 미국으로 가자고 조르는데다 둘 다 교과서를 구하지 못해 한 달 이상을 자습서·참고서만으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박씨는 『특히 교육제도·교육내용의 차이 때문에 학교생활에 좀처럼 적응치 못하는 것 같다』며 『고교생인 딸은 그래도 대학진학 때 정원의 입학대상이어서 귀국자녀끼리 경쟁만 하면 돼 약간은 안심이지만 대학진학 때 정원 외 입학대상이 아닌 아들은 4년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항공사직원인 남편을 따라 4년간 서독에서 살다 지난해 5욀 귀국한 박모씨(50·서울 화곡동)는 『해외근무를 가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들고 찾아다니며 말리겠다』고 말할 정도로 자녀교육 문제로 골치를 썩인 뼈아픈 경험자.
『고교 2학년인 둘째 아들이 학교생활에 적응치 못해 신경정신과에 한 달간 입원까지 한끝에 결국 자퇴했으며 중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은 「학교가 재미없다」며 학교는 가지 않고 길거리를 헤매고 다닙니다. 서독에서 학교 다닐때는 그렇치 않았습니다.』
귀국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뿐이 아니다.
『학교엘 가면 반 친구들이 내 발음이 이상하다며 놀려요. 외국 살다온 티내지 말라고 비웃기도 하고요. 국어·사회시험 점수가 엉망이라 나 때문에 우리 반 평균점수가 떨어진다고 선생님이 꾸지람을 해요』(서울S국교 6년 김모군).
『선생님들이 너무 엄격해서 무서워요. 머리가 길다고 꾸짖고 옷차림이 그게 뭐냐고 때리기까지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요. 어디가나 공부, 공부하는 통에 사는 재미가 없어요』(서울D여고 2년 박모양).
최근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은 모두 7천3백19명. 이 중 1천5백34명(국교 8백92·중학교 2백92·고교3백72)이 부적응 요인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대책=서울대 재외국민교육원 김종기 귀국자녀 교육과정 실장은 『이들 학생들이 귀국 후 학습 및 생활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해외체류중 대부분의 지역에 적절한 우리 교육시설 및 교사가 없는 데다 학부모들도 현지적응에 급급, 모국어 교육 등 교육문제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범정부적으로 해외거주 학생 교육 및 귀국학생 적응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귀국학생들이 특히 많은 서울 강남지역 교사들은 『귀국학생 거의 대부분은 6개월 정도만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하기 때문에 이 기간을 슬기롭게 넘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학부모들은 학교와 긴밀히 협조, 서두르지 말고 학생들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교사들은 덧붙여 『일부 학부모들은 적응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다시 외국으로 유학시키거나 국내 외국인학교에 보내는 일도 있으나 이 같은 도피적 방법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 재외국민교육원에서 방학동안 개설하는 「귀국학생 특별적응과정교육」과 2학기부터 재외국민교육원 교사들이 실시하는 순회교육·지도, 서울 YMCA에서 학기 중 매주 일요일 오후2시부터 4시까지 운영하고 있는 「지구촌클럽」등을 이용하는 것도 귀국자녀 교육의 한 방법이다.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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