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정치」 더이상 없길/복거일 소설가(논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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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대통령 집권후반 맞아:하/뜻밖의 정책변경은 충격만 뚜렷한 원칙세워 따르면 산뜻한 「뜻밖의 정치」 올 것
어떤 사물에 대한 평가는 평가의 기준을 찾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지만 흔히 잊혀진다. 그래서 한 정권의 공과처럼 복잡하고 논란의 가능성이 높은 주제에 대해서는 기준을 뚜렷이 하는 일에 각별히 마음을 써야 한다.
노정권에 대한 평가에 쓰일 궁극적 기준은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는 뒷날의 역사가들처럼 그런 기준을 제대로 쓸 수 없다. 그것을 대신할만한 것들 가운데 가장 적절하게 여겨지는 것은 노태우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1987년 겨울에 우리가 지녔던 기대다.
그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새 정권이 권력을 물려받는 당연한 일조차 당연히 이루어지리라고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경제에 대한 걱정은 아니다. 경제에 대한 걱정은 컸고,물리적 강제에서 풀린 사회적 욕구들에 따라 나올 혼란에 대한 걱정은 더 컸다. 지금 사회의 모습은,비록 어두운 면들이 많지만 그때 우리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렸던 풍경들보다는 밝다.
물론 현실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곧바로 노정권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사회의 밝은 모습에서 그들의 공으로 돌려야할 몫이 어느 정도인지,그리고 어두운 모습에서 그들의 허물로 돌려야할 부분이 얼마만큼인지는 누구도 얘기하기 어렵다. 그래도 사회의 지금 모습이 1987년의 기대보다 낫다는 사실은 일단 노정권에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결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노대통령이 시민들로부터 가장 크게 경멸받고 존경이나 사랑은 가장 적게 받은 대통령이며,군복을 입었을 때의 행적때문에 그의 정치적 자산이 아주 적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노대통령의 1987년까지의 이력과 1988년이후의 그것을 나누어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노정권의 공과를 따지는 것이지,자연인 노태우의 그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평가 기준을 1987년에 우리가 지녔던 기대로 잡은 것에 동의한다면,그리고 지금 현실이 그 기대보다 낫다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그런 평가가 비록 뜻밖이고 입에 맞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노정권위에 드리운 원죄의 짙은 그늘 때문에,특히 군복을 입었던 시절의 노대통령의 행적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에는 당연히 남은 기간에 대한 전망과 요구가 따라야 한다.
노정권의 모습을 살필 때 눈에 이내 들어오는 것은 목표의 허술함과 수단의 치밀함이다.
시민들의 꿈과 노력을 모을 지향점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노정권의 모습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 지향점을 제시하기에는 그들의 원죄가 너무 컸다. 반면에 어떤 목표가 정해지면 그것을 이루는데에서는 상당한 솜씨를 보였다. 집권 초기에 반동의 위협을 줄여나간 과정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노정권에 이제부터라도 사회적 지향점을 보여달라는 얘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원칙을 좀더 뚜렷이 하고 되도록 그것에 따르라는 요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정부의 중요한 정책전환은 흔히 「선언」의 형태로 시민들에게 알려진다. 정책의 바뀜이 클 뿐 아니라 갑작스럽다.
자연히 판단과 행동을 갑작스럽게 바꾸어야하는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게된다. 시민들이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할 적군이라면 그런 관행은 칭찬받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난처한 것도 드물다. 정부가 뚜렷한 목표를 보여주지 않고 정책의 결정과 시행에서 원칙이 자주 무시되는 상황에서 그런 충격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아주 어렵게 하여 시민들의 이미 짧아진 시평을 더욱 짧게 만든다.
그런 사회적 환경에서 몇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비합리적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저축보다는 소비를,기업가들은 제조업보다는 용역업을,기술개발보다는 기술 수입을 선호하게 된다. 지금 문제로 지적되는 사회적 현상들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시민들의 짧은 시평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안정이 중요하다」는 시민들의 얘기를 찬찬히 살펴보면 그것은 가까운 미래에 관해서만이라도 전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희구임이 드러나는 경우가 흔하다.
「6ㆍ29선언」으로 정치적 토대를 마련한 사람에게 충격을 극대화하는 「선언정치」는 큰 매력을 지닐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그에게서는 으레 뜻밖의 것을 기대하게된 시민들에게 뜻밖의 것을 계속 보여주는 일은 이미 힘들어졌음을,그래서 이제는 다시 무슨 「선언」을 은밀히 꾸미기보다 미리 원칙을 제시하여 시민들의 시평을 늘리는 것이 단기적으로도 오히려 효과적임을 살펴야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원칙과는 거리가 멀었던 정치가가 갑자기 원칙을 찾는 것은 시민들에게는 모처럼 산뜻한 「뜻밖의 것」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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