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안한지 아십니까/이상우 서강대교수ㆍ정치학(논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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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대통령 집권후반 맞아:상/지도자의 의지 약해보이면/사람들은 방황하게 마련/「민주통합」해 실지 되찾길…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 국내정치가 어떻게 풀려갈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어수선한 집권여당,앞이 안보이는 야당통합,파행적인 국회…. 오르는 물가와 내려가는 증권시세에 또 무슨 날벼락같은 조치가 떨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업인들도 손놓고 있고 소시민도 겁을 먹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목적인지도 모를 통일관계의 폭탄적 성명들까지 마구 쏟아져 나오니 국민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아무리 오늘의 형편이 어두워도 앞길이 보이면 희망을 안고 참으면서 견뎌주는 것이 착한 우리 국민들의 마음씨인데 앞길이 안보이니 무얼 참고 무얼 기다려야할지를 몰라 모두 당황해하고 있다.
정치체제이든 경제체제이든 하나의 체제가 허물어지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지는 징후는 질서의 붕괴다.
줄 선 사람이 손해를 보고 법을 어긴 사람이 이익을 보게되면 줄서는 질서,법지키는 질서는 깨진다. 성실한 사람,열심히 사는 사람이 칭찬받고 게으른 사람,거짓을 일삼는 사람이 벌받는 신상필벌의 체계가 무너지면 그 사회는 흩어지게 된다. 역대의 제국들이 망할때는 이런 기강의 문란이 제일먼저 나타났었다. 가짜가 횡행하고 무능한 자가 권력을 쥐는 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 사회는 붕괴의 길에 들어섰다고 보아야 한다.
사회가 불안해지면 모두 정치지도자,그리고 특히 최고통치자를 쳐다보게 된다. 그 사람들이 사회발전의 방향과 사회질서를 지켜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확고한 신념과 불변의 의지,그리고 제시한 목표를 관철할 만한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버텨주면 사람들은 그 지도자를 믿고 곤경을 이겨낸다. 그러나 지도자의 세상보는 안목이 의심스럽다거나 의지가 약해보인다거나 무능하다고 생각되어지면 사람들은 방황하게 된다.
민주국가에서 최고통치자가 해야 할일은 두가지로 꼽히고 있다. 첫째는 책임있는 직위에 바른사람 앉히는 일이고,둘째는 그 사람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정치적 지원을 해주는 일이다. 통치자가 혼자서 나라일을 해나갈 수는 없다.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사람을 가려뽑아 일을 맡겨주면 되는 것이다.
장관자리를 전리품처럼 여기고,가까운 사람들과 정치적으로 신세진 사람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하면 일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바른 인사가 통치자의 신뢰감을 결정하는 첫 요소라고 교과서에도 씌어있다.
민주국가에서는 주권자인 국민의 지지를 얻지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펴나갈 수 없다. 그 지지를 창출해줄 책임이 통치자에게 있다.
그래서 통치자는 다수정당의 우두머리가 맡도록 안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통치자는 행정자가 아닌 정치지도자가 되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집권여당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최고통치자가 져야한다.
단임대통령의 임기가 반이 지나갔다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동안 이룬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판단되면 나머지 임기동안 두배이상의 노력을 해야 평균에서 「보통대통령」으로 임기를 명예롭게 마칠 수 있을 것이다. 한사람의 소시민으로서 최고통치자의 깊은 뜻을 헤아릴 길이 없으나 일할 수 있는 시간의 촉박함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해야할 일은 태산같으나 급한 것 서너가지만 제시해 본다.
첫째는 질서의 확립이다. 이 사회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요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해주기 바란다. 줄 서는 사람,법지키는 사람이 우대받고,법 어기는 사람이 꼭 벌을 받는다는 믿음이 서게 해주기 바란다. 이것이 통치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의 근본은 믿음이다. 약속은 조금만하고 해놓은 약속을 정확히 지켜야 믿음이 생긴다. 한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해버리면 그 결과는 불신의 화살이 되어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둘째로 모든 사회갈등의 원천을 이루는 부의 분배문제에 대해 본원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불로소득의 온상이 되어있는 토지문제를 그대로 두고는 이 사회내에서 국민적 일체감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은 마당에서 어떻게 북한주민까지 포함하는 통일을 꿈꾸겠는가.
끝으로 여당의 책임자로서 민자당을 민주정당으로 개편해 진정한 정당정치 전개의 기틀을 잡아야한다. 통치권의 기초는 국민의 지지이고 국민과 통치권자를 연결하는 고리가 정당인데 국민이 외면하는 정당을 가지고는 정치적 정통성을 주장할 수 없게된다. 이것이 오늘의 정치위기의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
위의 세가지를 모두 합치면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민주통합의 과제」라 부를 수 있다. 이 민주통합의 과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과제를 풀어가는 기초가 된다. 이 과제의 성취없이는 어떤 다른 과제도 풀어나갈 수 없을뿐더러 우리 체제 자체의 존립마저 위협받게 된다.
2년반전에 대통령후보로 공약을 발표할때 첫째로 민주통합을 약속했던 것을 온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공약의 실천이 부진했다고 믿는 국민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2년반동안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자명하다. 민주통합에 앞장서서 지난 2년반동안 잃었던 실지를 회복하는 일,바로 그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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