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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개정안 의미] 같이 살면 장인·장모도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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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28일 논란을 거듭해온 호주제를 폐지하기로 최종 확정함에 따라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이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그간 호주제의 문제로 지적돼온 남아선호 사상과 여아 낙태.성비불균형 등 사회적 문제가 점차 해소될 전망이다.

여성단체들도 이날 일제히 환영 성명을 내고 "호주제의 폐지로 민주적.수평적 가족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민법 개정안은 지난달 4일 입법 예고됐던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가족 해체'에 대한 일부의 우려를 감안, 당초 삭제 대상이었던 '가족 개념'을 다시 만들었다.

지금까지 부계 혈통으로 계승되던 가족의 개념이 양계(부부) 혈통으로 계승되도록 한 게 골자다. '아버지'중심에서 '부부'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여성계는 이를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호주'가 사라진다=호주제의 폐지는 남성이 중심이 되던 '가장'의 개념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주제에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이 구성됐다. '호적을 파가라' '출가 외인' 등의 말은 집안의 주인인 호주로부터 호적을 옮긴다는 것을 뜻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장인 '호주'가 없어지고 개별 구성원들은 법률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다. 이 경우 어린 아들.손자가 어머니.할머니를 대신해 호주가 되고 가장으로서 집안을 이끌어 간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사라진다. 현행 호주제에서는 아들 우선 승계 원칙에 따라 어린 아들.손자가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하는 어머니.할머니를 두고 법률적으로 '가장'역할을 해왔다.

이번에 새로 규정한 '가족의 범위'는 ▶부부▶그들과 생계를 같이 하는 혈족 및 배우자▶부부와 생계를 같이 하는 그 형제자매로 돼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처의 부모라 할지라도 생계를 같이할 경우 가족이 된다. 이제까지는 남자, 즉 호주를 중심으로 봤기 때문에 장인.장모는 가족이 아니었다.

◇자녀 성도 바꾼다=민법 개정안은 자녀가 아버지의 성(姓)과 본(本)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고통받는 재혼 가정 및 이혼 가정 자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연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재혼한 엄마를 따라 사는 자녀의 경우 새아버지의 호적에 올릴 수는 있었지만 성은 바꿀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호적등본.주민등록등본 등에 재혼 가정이라는 사실이 바로 노출됐다.

이를 감안해 개정안은 자녀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다면 가정 법원의 판단에 따라 자녀의 성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이혼 가정의 경우도 해당된다. 어머니가 친권과 양육권을 갖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경우도 자녀의 호적은 아버지의 호적에 올라 있었다. 비자 등 서류를 발급받을 때나 이력서 등을 쓸 때 함께 생활하지 않는 아버지를 호주로 기재해야 했다.

◇입법 전망=정부 방안이 최종 확정됨에 따라 이제 국회에서 통과되는 절차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많은 국회의원들은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입장 표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저울질하면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서둘러 주말께 정기국회에 법안을 상정해도 연내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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