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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단체에 농락당한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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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5일 오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서울 미금동 경찰청 앞에서 영화를 상영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몸싸움을 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25일 오후 7시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 건너편 의주로 공원. 20여 명의 시위대와 500여 명의 경찰이 맞섰다. 하얀 대형 스크린을 앞세운 시위대는 '대추리의 전쟁'이라는 영화를 경찰청사 앞에서 상영하겠다고 주장하고, 경찰은 이 행사가 영화 상영을 가장한 불법 집회라며 해산을 종용했다. 결국 한시간의 실랑이 끝에 시위대가 자진 해산했다.

◆ 무슨 일이 있었나='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공동대표 문규현 신부.홍수근 목사, 이하 평통사) 서울지부는 8월 30일 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제1회 평화영화제(26~29일)를 열 테니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를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악명 높았던 대공분실의 이미지를 털어낼 수 있다고 판단해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평통사는 여중생 사건 범국민대회, 평택 대추리 집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등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단체다.

그러나 사단이 벌어졌다. 9월 18일 상영작 영화 목록을 받은 경찰은 영화제 개막작이 '대추리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평택 대추리는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할 곳으로 시민단체.주민과 경찰이 여러 차례 물리적 충돌을 빚은 곳이다. 이를 배경으로 2005년 2월부터 2006년 5월까지 대추리.도두리 주민의 생활을 50분짜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영화가 '대추리의 전쟁'이다. 뒤늦게 평화영화제의 실상을 파악한 경찰은 9월 28일 장소 사용을 허가하지 않기로 했다. 임국빈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장은 "경찰의 진압장면만 부각시킨 영화를 경찰 건물에서 상영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평통사 측은 "담당 경찰관이 구두로 이미 허가했다. 경찰이 약속을 위반했다"며 경찰청 앞에서 1인 항의시위를 벌여 왔다. 그리고 이날 길거리 상영을 시도했다.

◆ 망신 자초한 경찰=경찰은 방패 등으로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영화가 청사 앞에서 상영될 경우 그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다. '폭력 경찰'이 되는 전.의경들의 사기와 시민들의 눈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평통사의 집회를 금지하지 못했다. 영화 상영이 '문화행사'의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전.의경 수송버스로 경찰청사 앞을 에워싸 시위대에게 공간을 내 주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평통사 측은 26일부터 나흘간 민주노총에서 영화제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공권력이 농락당한 느낌"이라며 "경찰이 자신을 공격한 단체의 선전전에 이용당했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seajay@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 경찰청 인권보호센터=1986년 박종철씨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은 지난해 7월 대공분실을 사용하던 보안3과를 홍제동으로 옮기고 인권보호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 바로잡습니다

10월 26일자 2면 '반미 단체에 농락당한 경찰'기사와 관련, 서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 9월 18일 이전 '평화영화제'의 상영작 중 '대추리의 전쟁'이 포함된 사실을 공문을 통해 전달했다"고 본지에 알려왔습니다. 확인 결과 경찰은 당초 설명과 달리 9월 6일 평통사의 장소 대여 요청 공문을 접수하면서 평화영화제 상영작 목록도 함께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기사 중 "9월 18일 상영작 목록을 받아든 경찰" "뒤늦게 평화영화제의 실상을 파악한"이란 표현은 사실과 다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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