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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었던 아이들 마음 그림으로 훈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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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타트 마을 아이들에게 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로버트 리디코트(70).

서울 방화동 위스타트(We Start) 마을의 유선(12.가명)이는 미술관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난 뒤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유선이는 불우한 환경에 정신적 성장이 늦어 학교 공부만 따라가기도 벅찬 처지다. 초등학교 2학년의 학습 수준이지만 마음대로 읽고 쓰기도 불편한 아이다.

유선이는 21일 인사동 관훈갤러리 뒤뜰에 앉아 크레파스로 '점묘화'를 그렸다.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점을 찍어 단풍잎을 스케치북 가득 그린 유선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위스타트 마을에 다니는 초등학생 친구들 8명을 초청해 전시회를 보여주고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장인과 사위 사이인 화가 로버트 리디코트(70)와 조각가 최진호(37)씨. 이들은 주한호주 부대사인 메리제인 리디코트(41.여)의 아버지와 남편이다.

두 사람은 '김치와 베지마잇(호주의 대표적인 음식)의 만남'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방화 위스타트 마을 아이들을 초대했다.

로버트 리디코트는 점묘법으로 화려한 색채를 표현하는 화가. 한국을 8번째 방문하는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오대산.북한산 등 한국의 가을 풍경을 화폭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에선 한국 재래시장의 아줌마들을 주제로 삼았다. "보이는 색 중에 제일 예쁜 색을 강조해서 그린 거에요"라고 로버트 리디코트가 설명하자 알록달록한 원색의 그림을 본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이번 자원봉사 아이디어는 메리제인 리디코트 부대사가 냈다. 대사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리디코트 부대사는 "어린 아이들은 모두 창의력 면에서 천재"라며 "가난 때문에 상상력을 펴지 못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이 첫 자원봉사인 아버지와 남편은 리디코트 부대사의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다.

최진호씨는 아이들의 그림지도를 담당했다.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앉아있던 영재(10.가명)는 "전시회 기념 화환을 그려봐"라고 귀뜸하는 최씨의 조언을 듣자 곧바로 '훌륭한' 그림 한점을 완성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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