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 핵 도박판, 마지막에 누가 웃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뉴스위크 북한 핵실험으로 중국은 낭패를 봤다. 핵실험을 막기위한 총력전이 허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9월 새로 부임한 류샤오밍(劉曉明) 북한 주재 중국대사는 북한 지도부에게 중국 수뇌부의 단호한 메시지를 전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말 것과 핵실험을 한다면 북-중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겼다. 각종 외교 채널로도 같은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북한은 10월 들어 핵실험을 예고하더니 9일엔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날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핵실험 반대 의사를 밝힌 바로 다음날이기도 하다 . “중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라고 중국문제에 정통한 외교안보연구원 김흥규 교수는 말했다.

중국에서 한반도 정책에 관여하는 관료, 학자들 대부분은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으로 생각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내가 접해본 대부분의 중국 관료, 학자들은 북한 핵실험을 예상 못했다. 그래서 당혹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교수는 추석연휴전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조선반도평화연구중심’ 주임 우미화(于美화(化 밑에 十)),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張璉귀(王변에 鬼) 교수, ‘중국개혁개방논단’ 관계자등 한반도 정책 담당자들을 두루 만났다. 이들중 張璉귀(王변에 鬼) 교수 정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북핵실험을 예측하지 못했다. 핵실험 이후에도 중국의 관계자들은 “북한의 다음 수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사태를 한발짝 떨어져서 보는 한국의 전문가들에게 북한의 미래를 물어보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그런데도 미국의 네오콘 논객들은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방조한 것으로 의심한다. 미국 신보수진영의 싱크탱크격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데이비드 펌(David Frum)연구원은 북한의 핵실험 다음날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중국을 비난했다. 펌 연구원은 “막대한 식량과 음식을 북한에 지원하는 중국이 강력하게 만류했더라면 북한은 핵폭탄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 정세의 불확실성에서 잠재적인 이득을 기대하므로 합당한 대가를 치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토(NATOㆍ북대서양 조약기구)를 동북아로까지 확대해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까지 회원국으로 묶자고 제안했다.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발상이다. 특히 대만까지 나토 참관국으로 초대하자는 주장까지 내놓아 중국 당국을 긴장케 했다.

댄 브루멘털(Dan Blumental)도 보수성향의 위클리 스탠다드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에 대한 불신감을 표출했다. 그는 중국입장에서는 미국과 동맹하는 통일된 한국보다는 핵을 가진 북한이 나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김정일위원장과의 관계악화를 원치 않았다”며 북한의 핵실험을 중국이 방조했을 가능성을 진하게 암시했다.

브루멘텔은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직후에도 중국이 대만과의 분쟁에서 미국을 향해 꺼내들수 있는 ‘꽃놀이패’로 북한의 미사일 뇌관을 살려뒀다고 비난한 바 있다.

중국은 어쩌다 이처럼 동네북으로 전락했나? 중국이 핵을 북한의 벼랑끝 외교 수단이라고 주장한 것부터가 잘못된 출발이다. 어쨌던 북한이 핵을 덥썩 삼켜버렸다. 북한 핵을 반대한다는 중국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법도 하다. 하지만 중국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중국이 달라진 북한의 전략적 목표를 간과했다고 본다.

지금의 북한은 예전의 북한과 판이하다. 전문가들이 전하는 중국의 의중은 이랬다. 중국지도부는 여전히 자신들이 진지하게 결심해서 심각하게 설득하면 북한이 끝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잣구와 조문을 하나 하나 따지는 서방세계의 외교와 달리 북-중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해하고 행동하는 사이로 믿었다.

하지만 중국은 세월의 무상함을 몰랐다. 서로 마음이 통하던 양국의 원로세대들은 다 퇴임하고 신진인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한국으로 따지면 386세대들 즉, 기성세대와는 다른 계층이 양국 외교의 근간을 이루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유대감이 약하다. 중국의 경우 북한을 ‘특수 관계’로 이해하는 경향이 아래로 갈수록 옅어진다.

후진타오등 중국 지도부 마저도 실용주의 관점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를 특수 관계에서 정상국가 관계로 가져가려했다. “중국은 핵 논란을 야기하는 북한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북한은 국익을 먼저 계산하는 중국 지도부가 상당히 불만스러웠다”고 조민 통일연구원 박사는 말했다. 중국의 설득과 회유가 통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대북정책연구실장은 “후진타오 속내는 북한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내 북한은 중국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담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핵실험으로 가는 게 북한에 훨씬 이롭다고 판단했을까? 이를 제대로 알자면 중국을 보는 북한의 시각부터 살펴야 한다.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 교수는 10월 핵실험을 “중국의 압박이 더 심해지기 전에 선수를 친 것”으로 풀이했다. 윤교수는 나아가 “북한이 대포동말고 동북아와 중국 상해까지 사정거리에 둔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는 비단 일본, 한국만 겨냥한 게 아니다. 중국에게도 유사시 공격할 수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했다. 아주 절박한 상황에 놓인 심정을 미사일에 담아 시위를 한 셈이다. 얼마후 중국도 북한 접경 국경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한 점 역시 양국 관계가 이전과 다르게 굴러가는 방증일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은 대국 의식에 기초해 국익 우선의 외교전략을 펴는 중국을 전폭적으로 믿지 못하는 것이다. 북한에게 북핵 타결을 위한 6자회담은 중국에 대한 불신감을 쌓아가는 과정이었다고 김홍규 교수는 진단했다. 금융제재로 북한의 목을 죄면서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미국의 의도에 중국이 합세했다고 간주한 것이다. 사실 중국은 북핵 문제가 악화되는 것에 비례해 미국과 밀월관계를 누린것도 사실이다.

중국이라고 북한이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북한 고위층의 발언에서도 불편한 심사가 묻어나온다. 중국을 방문하는 김 위원장은 최고 수준의 경호와 예우를 중국측으로부터 제공받는다. 하지만 의전을 담당하는 중국 관리들은 “김 위원장은 당일 떠나야지 떠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푸념을 뒤에서 늘어 놓는다. 김 위원장은 예측불가능하고 제멋대로인 군주로 각인돼 있다. 중국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북한 지도자에 대한 불평인 셈이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이처럼 꼬인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 제재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때까지 목을 죄겠다는 기세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면서 ‘물리적 대응’을 공언했다. 물리적 충돌 가능성은 정점을 향해 치닺는데 이를 적절하게 제어할만한 관련국간 신뢰를 바닥을 보인다. 위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 쫒기듯이 핵을 가진 북한이 핵을 버릴까? 공식적으로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변함이 없으며 핵실험도 그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지도부도 북핵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한 하나의 카드라고 두둔한다.

하지만 국내 학계에서는 핵무기를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목표 그 차제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남한의 GNP는 북한의 40~50배에 달한다. 국방비가 북한 GNP보다 크다. 국력격차가 비교가 무의미할 만큼 현격해졌다. 이런 추세라면 남한으로의 흡수 통일을 걱정해야할 판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필사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는게 윤덕민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과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은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은 제한된 핵능력을 인정해주면 미국에는 위협을 주지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지난해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을 만난 김위원장은 “미국과 수교하고 우방국이 된다면 일개 국가가 가질 수 있는 미사일만 갖고 장거리 미사일과 대륙간 미사일은 다 폐기하겠다”고 했다.

핵물질이나 핵무기를 이전하지않는 전제로 동북아에 국한된 핵능력을 보유하려는 집착이다. 통일연구원 조민 박사도 “이해득실을 따지면 핵실험에 따른 손실은 모호한데 이득은 상당하고 구체적이다. 김정일 정권이 존속되는 한 핵 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종전의 6자회담은 북한 핵을 없애는 조건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우월적 지위를 미국이 인정하는 기조위에서 진행된 측면이 강하다. 이는 중미간 각종 채널을 통해 양해된 사안이다. 하지만 6자회담의 틀은 북한 핵실험으로 깨졌다. 이제 핵을 보유한 국가 북한을 대상으로 나머지 5개국이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국면이 변한만큼 프레임도 바뀌는 단계에 들어섰다.

지금은 북핵실험에서 보듯이 중국의 입김이 북한에 잘 먹혀들질 않는다. 물론 북한은 중국의 전략물자로 연명해나가는 처지이긴 하다. 원유수입의 75% 정도를 중국에 의존한다. 북한의 대중 교역은 전체의 45% 이상이다. 이런 교역과 지원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면 바로 체제에 치명타를 맞기 쉽상이다.

테드 갈렌 카펜터 미국 카토(CATO) 연구소 부소장은 중국이 대량 에너지와 식량을 제공해 북한 정권을 존속시키는 국가이므로 전복시킬 능력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내 학자들은 핵실험 당시 북한이 이런 조건을 충분히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최악의 경우에도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서지 않았으면 핵실험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중국 역시 대책도 없이 북한을 붕괴 내지 혼란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을 수도 없는 처지다. 게다가 핵을 가진 북한은 미국의 군사공격 가능성을 일정 정도 차단하는데 성공했다고 판단할 게 분명하다. 사실 미국은 핵보유국을 공격한 예가 없다. 주한 주일 미군에 대한 핵공격이 예상되는 북한에 대한 공격은 정치적으로도 동의를 얻기 어렵다. 핵문제 해결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구도이다.

앞으로 한반도 상공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북핵 해법을 위한 새로운 틀은 제대로 만들어지기나 할까?

모든게 불확실한 국면이지만 하나 확실한 건 북한과 미국 사이는 점점 악화된다는 사실이다. 그 수순은 쉽게 추론된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입각해 대북 제재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 나간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한계 상황으로 몰고 가려들 것이다. 유엔 차원의 경제제재에다 금융거래 전면 중단, 해상에서의 검색 강화 등 수단은 늘려 있다. 한국의 금강산사업, 개성공단사업 등 경화를 지원하는 사업 중단도 종용한다. 중국의 대북 전략물자 지원 중단 압력을 넣는다.

인도적 지원은 필요한 최소의 양만 인정하고, 그것도 투명성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선에서 수용한다. 이와 함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를 확대, 강화한다. 북한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도 ‘민족 공조’와 ‘한미 동맹’이라는 두 진영으로 쪼개질 수 있다.)

여지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북미 직접 대화는 오랜기간 없을 것이다. 김창수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실장은 “미국의 불신때문에 양자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1994년 양자대화를 통해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최종적으로 결렬되면서 모든 비난을 떠안아야 했다. 한국 국민들에게 미국 책임론이 먹혀들면서 반미 분위기가 고조됐다.

똑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게 부시행정부의 확고한 원칙이라고 김창수 실장은 전했다. 금융제재의 파괴력을 실감한 부시 행정부는 비 군사적 제재를 지속하면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믿는 듯하다. 북한문제에 정통한 한 인사는 “미국이 핵실험에 짐짓 놀란 척 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점진적인 북한 고사작전에 한국과 중국의 참여를 강제하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김창수 실장도 “이제는 부시가 나설 필요가 없다. 중국이 대신 그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약발이 떨어지면 더 강한 약효를 찾기 마련이다. 미국이 꿈쩍하지 않을 수록 북한은 더 더욱 극단적인 수단에 매달린다.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북한 지도부가 자제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구본학 한림대 교수는 “북한의 대안은 무력 시위 혹은 도발”이라고 말했다. 핵실험을 더 하거나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능력을 과시하는 경우다. 미국을 경악케 하려면 대포동 등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레드라인을 넘어 핵확산을 시도한다. 김흥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이쯤되면 북한 처지는 참담한 지경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다 굶어죽는데 정말 심각하게 우리를 고려해주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심정에서 그럴 수 있다. 그냥 있으면 어짜피 죽으니까 죽기 살기로 나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대국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대처할것인가? 경제발전과 2008년 북경 올림픽 성공적 개최가 절실한 중국은 북한 핵문제를 놓고 미국과 대립할 처지가 아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면 미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백승주 실장은 말했다. 미국은 북핵 문제로 세계적 차원의 군사적 헤게모니 유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란의 핵불용 원칙’을 고수하기위해서라도 북핵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민 통일연구원 박사는 강조했다. 그렇다면 절박한 상황에 놓인 양국이 윈-윈으로 가는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테드 갈렌 카펜터 미국 카토(CATO) 연구소 부소장 같은 이들은 정권교체론를 주장한다. 카펜트 부소장은 지난 9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에서 핵보유국 출현을 막기위한 방안은 제시했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 정권 붕괴이후 탈북 난민 유입과 미군이 통일한반도의 중국 국경 지대까지 배치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은 타협을 해야한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안보동맹 종식과 미군철수를 중국에 약속한다. 중국이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고 핵 프로그램을 종결한다. 카펜터 부소장은 “이 시나리오는 한국이 중국의 궤도로 편입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면 가능하다”고 했다.

미국 유력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의 로버트 카플란 편집장은 10월호 기사에서 북한 붕괴를 예견하면서 정교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자원의 고갈(1단계), 인프라 유지 불가(2단계), 독립적 봉건 영지 등장(3단계), 김정일 정권의 진압시도(4단계), 중앙정부에 대한 저항(5단계), 정권의 파열(6단계), 새로운 지도부 구성(7단계) 등의 수순을 밟는다는 전망이다. 김정일 정권 이후의 시나리오에 대해 그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군대를 투입하지 못하며 유엔 승인아래 미국, 중국, 한국, 러시아 4국 연합국이 투입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최선책은 신탁통치아래 북한을 남한의 보호령으로 삼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면 한국 출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관할하는 PKF가 북한에 들어가게 된다. 한국으로서는 PKF의 평범한 일원으로 달랑 참여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반 사무총장을 통해 한국에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의 움직임도 심상치않다. 지금 중국에는 미국,일본, 한국 등 북핵 이해당사국 관계자들로 득실댄다고 김창수 실장은 말한다. 북한 핵실험 발표이후 발걸음은 더욱 분주해졌다고 한다. 특히 미국 인사들의 중국방문이 눈에 띨 정도로 빈번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핵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미ㆍ중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정책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백승주 실장은 “중ㆍ미 정부간 거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 중국이 직접 나서서 정권을 교체하지는 않겠지만 북한의 정권교체를 방조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과 미국이 일각의 관측대로 북한 정권 교체를 시도한다면 대략 이런 경로를 택할 것이다.

먼저 중국이 국제 제재에 편승해 식량과 에너지 지원을 줄인다. 북한 체제는 극심하게 동요한다. 이때 집권층내의 대안 세력이 중국의 묵인하에 정권을 찬탈해 친중정부는 세운다. 친중정권 출현과 관련해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김정남을 선호하지만 김정철이든 누구든 중국의 이해를 대변할 인물이면 권력을 쥘 수 있다“고 했다. 권력 교체과정에서 저항을 줄이기 위해 김 위원장만 교체하고 기존 정권 엘리트는 고스란히 남겨두는 방식도 있다.

인적제거가 여의치 않을 경우 군부의 쿠데타도 유효한 방편이다. 부시행정부에서 일을 햇고 지금은 런던 소재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소(IISS) 연구조사국장으로 있는 패트릭 크로닌은 핵실험후 북한 내부 정세를 이렇게 추론했다. “핵실험전에 북한의 군부 지도자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다는 맹세를 했다.

이게 과연 충성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장군들을 장악하려는 북한 지도자의 사전 경고인가? 김 위원장은 핵실험으로 외부의 간섭에서 확실하게 벗어났다. 하지만 내부의 쿠데타 우려는 더욱 커졌음을 잘 안다.” 역시 중국과 교감을 갖는 일단의 군부세력이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내부에서도 김정일위원장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아직은 소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 중국에는 두가지 흐름이 충돌하는 중이다. 북한과의 전통우호 관계를 지향하는 세력이 권력을 쥐고 있지만 영향력 있는 인사중에서도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정부 입장에서는 북핵 파동으로 초래되는 비용이 중국이 감내할 수 있는 비용을 초과할 경우 인적 교체도 당연히 옵션이 된다. 외교안보연구원 김홍규 교수는 “지금은 아니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동북아 안정을 위협해 중국의 근본적 이익에 악영향을 주면 그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놓고 중국이 미국과 많은 협의를 하는 중이라고 국방연구원 김창수 실장은 밝혔다.

미국 역시 돌연사, 쿠데타 등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미국을 주로 연구해온 국방 전문가는 전했다. 외압에 의한 변화보다는 내부의 돌발사태 가능성을 높게 본다. 한국도 그런 사태를 대비해왔다. “이미 2주전에 정부 차원의 시뮬레이션 작업이 있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것으로 확신했다. 핵을 가진 김정일 위원장 체제의 대안을 상정하는 작업이었다”고 국방 부문의 한 소식통은 전했다.

국방정책에 관여하는 고위급 인사는 중국과 미국 전문가들이 논의중인 프로세스를 소개했다. 미ㆍ중 학자들이 북한 처리 문제에 합의한다→ 최종안을 중국과 미국 정부가 수용한다. →중국은 급변시 안전관리와 난민 방지를 위해 국경을 강화한다 → 유사시 미국의 양해 하에 군사를 북한에 보낸다→ 중국은 미국에 필수 정보를 핫라인으로 제공하고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추진한다. 이런 논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런 쪽으로의 움직임이 시작됐음을 말한다. 이 인사는 “북한에 군사력 투입은 유엔평화유지군(PKF)형식이 될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아주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읶다. 중국이 우려하듯이 대량난민 발생과 핵 등 대량살상무기의 유출을 야기할 수 있다. 국지적 내전, 인명살상 등 비극적 사태로도 이어질 수 있어 도상연습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중국내 대안세력이나 2인자 그룹이 형성되지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또 중국과 미국사이의 최대 암초인 대만 처리방안도 난제다.

“중국이 핵 해체를 위해 적극 나서려면 미국이 대만을 반대급부로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구본학 한림대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을 괴롭힐 수 있는 수단으로 북핵보다 대만을 더 중시한다.

중국은 북ㆍ미간 직접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이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북미 양자대화가 북한과 미국간의 급속한 접근을 낳고 궁극적으로 북한을 친미국가로 이끄는 시나리오라면 그렇다. 북한을 열번째 방문한 셀리그 해리슨 워싱턴 소재 국제정책연구소 아시아 프로그램 책임자가 지난주 뉴스위크를 통해 한말은 상기해봄직하다.

“비공식적으로 북한 관료 여러명이 북한의 지정학상 전략적 위치를 지적하며, 북한정부는 멀리 있는 강대국 미국과 가까워져 이웃나라들의 압력을 견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위험지역에서 우리가 중립적인 완충국가 역할을 해주면 미국에도 좋다. 혹 누가 알겠는가. 북ㆍ미가 우방이 된다면 미국이 우리의 항구와 정보 덕을 볼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고 한 관리를 말했다.”

해리슨이 전한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재설정시 아주 긴밀한 파트너로서 기능하기를 원한다. “말 그대로 친미적이고 안전한 북한 정권이라면 미국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김흥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말했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유화책을 구사하면서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 유엔의 제재가 강화될 수록 6자회담을 통한 북핵해결 여론도 고조될 건 뻔하다. 이때 북한이 조건없이 6자회담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공조를 흔들어 놓는 효과도 있다. 핵 해체를 위한 검증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런사이 국제사회 대북 제재 대열도 흐트러지기 마련이다.핵을 보유한 북한은 6자회담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한다. 그러면서 미국 이익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옵션을 제시한다. 핵 확산을 하지 않고 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한다. 한마디로 미국에 위협을 주지않는 핵보유국으로 남는 거다.

또 수용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북한이 전격적으로 북ㆍ미 핵군축협상을 제안하는 길도 있다. 북한 핵실험으로 6자회담은 물건너 갔다는 전제에서다. 핵을 가진 미국과 북한이 동등한 자격으로 협상을 하게 되면 동북아 무게 중심은 급격하게 미국쪽으로 쏠린다. 이후 북ㆍ미 관계는 북한이 바라는 대로 밀월에 접어든다.

자주를 생명으로 하는 국가가 친미를 한다고? 얼핏보면 모순되지만 중국 외교가에서는 그럴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있다. 좀 황당한 구석이 있지만 북한의 친미화는 중국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시나리오다. 내란이나 쿠데타도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친미정권이 들어서는 셈이다. 이는 중국으로서는 끔찍하지만 어찌해 볼 재간이 없다.

미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하는데 중국이 막을 명분도 힘도 약하다. 반대로 미국은 핵을 가진 북한이 자신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면 중국의 코밑에까지 진출하는 효과를 얻는다. 대중국 봉쇄ㆍ억제정책에도 부합하는 구도이자 동북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행사한다.

이 시나리오는 북한 정권 입장에서도 명분을 찾을 수 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이렇게 설명하면 된다. ”세계 최강의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통해 국가의 자존심과 위신을 지켜냈다.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선군정치와 타고난 영도력의 결과다.“ 동시에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면 정권 기반도 더욱 공고해질 따름이다.

“위기가 고도로 증폭되면 각국이 전략적으로 택할 수 있는 옵션도 넓어진다”고 김흥규 교수는 말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정영무 예비역 대장도 “미국도 대북 압박이 일정 단계에 도달했을 때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점쳤다.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본다는 말이다. 미국은 여러 정황상 북한을 확실하게 제압하는 수단인 군사력을 동원하지 못한다. 이때 모색가능한 차선책은 “북한이 핵을 가지되 대포동(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는 것”도 된다고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말한다.

다만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이런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지 의문이다. 현재 미국내에서는 부시행정부의 그릇된 대북정책이 북한의 핵무장을 부추겼다며 양자간 직접대화를 촉구하는 여론이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국내 국방정책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네오콘들이 지금도 김정일 위원장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어 쉽지않은 가설로 여긴다.

북한이 국제사회 제재를 견디다 못해 중국에 복속되는 사태는 한국에 최악의 시나리오다. 흑룡강성ㆍ길림성ㆍ요동성에 북한을 더하는 이른바 ‘동북 4성론’이다. 북한이 중국령이 되면 미국도 건드릴 여지가 없다. 중국의 당국자들과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어정쩡한 현상유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양측이 교착상태를 끌고 가는 것이다. 북한은 부시 정권 임기가 끝나도록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다. 북한은 부시정권임기까지 견딜 준비와 타산을 했을 것이다. 중국도 기본적으로 북한의 붕괴를 원치않는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존 여건을 제공하다. 미국 역시 국제 사회의 공조를 통한 고사작전을 구하지만 무력사용은 배제한다. 더 이상의 핵확산을 막으면서 압력수위를 높여 북한정권을 봉쇄하는 선에서 만족하는 전략이다.

세종연구소 이상현 안보연구실장은 “당장 해결을 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해결책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후 수단으로 전쟁이 있겠지만 여기에는 시나리오가 없다.

박성현ㆍ이정명 뉴스위크한국판 기자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