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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특별취재팀 50일간 현장에 가다 (32)|정부 정책 비판자는 "배반자" 격인|국가안보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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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국가안보주의는 라틴 아메리카에 권위주의적인 군사 파시즘을 자리잡게 한 이론적 명분이었다.
라틴 아메리카 현대 군부 국가들이 내세운 국가안보주의는 백인들의 군국주의와 유럽 파시즘, 미국 매카시즘이 뒤섞인 복잡한 「혼합물」로 그 속을 뒤집어보면 세련화된 식민 사회와 현실 순응의 숙명론을 호도 하려는 색채를 지니고 있다.
국가안보주의를 내건 라틴아메리카 군사 정권들의 「안보 독재」와 「개발 독재」는 결과적으로 개발이나 성장에 적잖은 역기능을 했고 가난·억압·착취로 요약되는 불의한 중남미 상황을 빚어내 오늘의 「위기」에 까지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안보주의 창시자는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
홉스는 『인민들은 자유를 누리는 대가로 국가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만능 국가 모델을 제시, 국가 안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안보주의는 1940∼1950년대 미 트루먼 행정부와 아이젠하워 행정부 때부터 태동, 케네디 행정부가 미국의 대중 남미 군사·정치 전략으로 재정립하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미의 중남미 전략>
따라서 이때부터 미 국방부의 라틴 아메리카 군부 장교들을 위한 교육 과정은 국가안보주의 교의를 라틴 아메리카 군부들에 주입시키기 시작했고 브라질 국방대학원 등에서는 지정학과 연결시켜 국가 안보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브라질의 국가 안보 이론을 정립한 대표적 선두 주자는 군부 막후 실력자인 코토 에 실바 장군이었다. 지정학에 뿌리를 둔 그의 이론은 일단 서방 세력과 공산 세력간의 항구적 세계 전쟁을 상정, 국가 안보를 지정학의 최우선 순위로 올려놓았다.
국방대학원 실림의 주역이기도한 실바 장군은 「항구적 세계 전쟁」이라는 정치적 전제로부터 출발한 자신의 국가 안보 이론을 통해 『브라질은 그 크기와 위치에서 남대서양을 지배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민주주의와 자유 기업을 안전하게 지킬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서구 문명의 파수꾼인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릇된 짓을 할리 없다고 단정하면서 「미국 이익·브라질 이익」이라는 등식을 세워 브라질이 특권을 지닌 미국 위성국으로 지역경찰 노릇을 해야하며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를 겨냥하는게 아니라 우리를 통해 미국을 겨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종국적으로 미국의 해외 투자 보호가 위성국인 브라질의 이익이라는데로 귀착했고 다국적 기업들의 신 식민 구조를 옹호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군사 정권들의 이같은 국가 안보주의는 국가만이 민족을 수호하고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국가 권력을 위해선 개인의 권리가 희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 안보 논리는 정부 정책의 비판자를 곧 배반지로 간주해버렸다.
국가안보주의를 앞세운 라틴 아메리카 군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데타를 통해 과테말라의 아르벤즈 (54년) 브라질의 굴라 (64년), 칠레의 아옌데 정부 (73년)등과 같은 민선 정부들을 넘어뜨리고 정권을 장악했다. 물론 이들 정부는 인민 사회주의를 표방, 반공 안보주의에 거슬렸고 또 이점이 쿠데타의 명분이기도 했지만 실은 이들 나라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국유화 조치 등에 얽힌 미국의 경제적 이해가 보다 깊은 정권 전복의 배경이었다.
미국의 대중남미 군사 정책이 주입시킨 국가안보주의는 아르헨티나의 군사 권위주의, 브라질의 군부 개발 독재를 탄생시켰는데 이 두 나라의 군사 파시즘은 가톨릭 신앙을 배경으로 통합주의적 조합 국가 체제를 갖추면서 아르헨티나의 경우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군부의 소수가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중세 신비주의적 교의를 내세워 금세기를 지배해 온 군부 독재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브라질의 군사 파시즘은 가톨릭 신앙의 윤리적 가치를 현실 속에 접목시키면서「국가 건설자」라는 개념을 통한 기술적 접근으로 군사파쇼를 정당화함으로써 중세 기사도의 열정에 회귀. 국가 구제자로서 군림한 아르헨티나의 권위주의 체제와는 성격을 달리했다.

<민선 정부를 전복>
이 같은 두 나라의 특징은 오늘의 라틴 아메리카 위기에서 아르헨티나가 브라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되는 근본적 원인이 됐다.
아르헨티나는 옹가니아 장군의 군사 정권 (66∼70년)에서부터 가톨릭적이고도 군인적인 덕성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조합 국가를 형성, 70년대 중반 이후 10년간의 악성 우익 군사파쇼의 길을 열었다.
옹가니아 장군은 쿠데타 직전의 피정에서 「이 나라의 운명을 젊어지도록 개인적 소명을 받았다」는 계시를 내세워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권위주의를 정착시킨 후 강력한 교조적 통치자로 군림했다.
중남미 대륙에 자리잡은 국가안보주의가 우선적으로 선택한 실천 과제는 반 게릴라 작전이었다.
파나마 미육군 미주학교는 우선 도시 게릴라 대항 작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 파시즘의 중남미 판인 라틴 아메리카 전체주의 (군사 파시즘)의 국가안보를 도왔다.
미 육군 미주학교 작전 교재 O-47은 ▲청년들의 실종·이동은 게릴라 집단을 형성키 위한 충원을 뜻할 가능성이 있다 ▲농민들의 소작료·세금·영농 자금 징수 거부는 그들에게 현재의 계율에 불복종하도록 지령, 교사하는데 성공한 어떤 반란의 존재가 생겨났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또 이 교재는 파괴활동이란 무장 반란에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의식화 교육, 시위, 파업, 절충적인 사회과학 이론 등과 같은 「비폭력적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기존 체제나 질시와 다투는 자는 그 누구라도 공산주의 영향을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논리로서 그 구체적 사례로는 역사를 왜곡시키고 제국주의를 논하는 지석인·학생 등을 제시했다.
따라서 가난과 부의의 역사적·사회적·경제적 원인들을 규명하려는 어떤 시도도 「파괴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노스캐롤라이나 포트브랙기지에 소재한 군사 원조를 위한 미 육군 연구소도 「심리전 교육 과정」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경찰 요원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사고 방식을 주입시켰다.

<테러·고문 잇따라>
이같은 반 게릴라전 교육을 받은 라틴 아메리카 군 장교들과 경찰 간부들의 상당수는 산등성이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보고 『저들은 모두 게릴라 협력자들이다. 한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체포하라』는 식의 전형적인 태도를 취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은 군과 경찰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치 못하면 자동적으로 게릴라 협력자로 간주돼 무고한 희생을 당하고 마는 경우를 흔히 겪어야만 했다.
물론 게릴라 측으로부터도 비협조적 반동이라는 이유로 위협과 살상을 당해야 했고….
게릴라 소탕을 국가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라틴 아메리카 군사 파시즘과 반정부 게릴라들의 대결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순박한 농민들의 목숨을 잃게 했고 법과 질서를 신화 속에 묻어버린 채 암살·고문·테러가 판치는 폭력 사태를 연출해 내고 말았다.
워싱턴 당국의 중남미 정책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제 공산주의라는 편리한 속죄양을 내세워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모든 과오를 깔아뭉개는 편리한 명분과 설득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 국방부 자문기관인 랜드 연구소는 한 보고서에서 『공산주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라틴 아메리카 군부의 반 게릴라 전술 및 민간 활동의 필요성이라는 미국의 선입관과 정책들은 역설적이게도 권위주의적 군사통치 체제를 고무했고 그러한 체제를 이끄는 군부에 대한 국민반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비판한바 있다.

<신부가 외친 절규>
물론 라틴 아메리카의 군사체제 유지에는 칠레에서 73년 극우 게릴라 단체인 「조국과 사유」와 함께 부유층 부인들을 동원, 유명한 「빈 냄비 행진」이라는 반 아옌데 데모를 벌이게 한 가톨릭 우익 단체 TFP (전통·가족·재산) 등과 같은 군사파쇼 지지자들의 공로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76단 미 하원 군사예산 청문회에서 에드워드 코크 의원과 스티프 윈십 국무부 안보 협력 국장이 주고받은 다음의 질의 응답은 미국의 책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게 안다.
코크=당신의 주장은 브라질 내에 어떤 내부적 위협이나 반란이 있을 경우 브라질 정부가 그 반란을 진압할 수 있도록 우리가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윈십=그것은 우리와의 관계에서 매우 본질적인 요소를 가진 것이며 외국 정부들에 대해 고려해야할 문제다.
미국이 주입시킨 국가안보주의가 빚어내는 문제들을 라틴아메리카 장군들 모두가 전혀 자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73년 중남미 육군과 미 육군 제10차 정례 회의에서 아르헨티나와 페루 장군들은 공신주의 논의에는 신물이 났으니 다국적 기업과 제국주의 같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다른 위협도 논의해야 한다고 불평한 일이 있다.
『만약 당신들이 당신네 나라에서 독재를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들에서도 독재자를 지원하지 말라. 당신네들에게 좋은 것이면 우리에게도 또한 좋은 것이니까.』
니카라과 예수회 페르난도카르데날 신부가 미 하원 증언에서 외쳤던 절규다. 글 이은윤 특집부장 문일현 기자 사진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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