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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가톨릭·지주와 함께 3대 지배 세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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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막강한 군부>
라틴 아메리카의 군부는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지주 및 산업엘리트들과 함께 3대 지배세력의 하나다.
이같은 라틴 아메리카의 지배구조는 5백년전 식민지개척시대부터 확립돼 지금까지 전혀 변함없이 계속돼오고 있다. 따라서 군의 지배세력화「전통」은 그 뿌리부터가 깊고 군이 차지하고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위상도 아주 강력하다.
라틴 아메리카의 부유 상류층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아들 넷을 두었을 경우 하나는 군에 보내 장성을 만든다. 나머지 셋은 신부·기업가·정치인으로 출세시키고.

<「쿠데타학교」별명>
이같은 상류지배계층의 입신 출세 선호도는 라틴 아메리카군의 지배세력과 전통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단면들 중의 하나다.
또 하나의 단적인 예는 브라질에서는 국방대학원을 흔히「브라질의 소르본 대학」이라고 부른다. 하필이면 군사학교에 세계의 지성을 대표하는 소르본이라는 별명을 붙였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보기도 했지만 국방 대학원을 나온 군의 고급 장교들이 누리는 막강한 특권을 이야기 듣고는 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군부의 영향력과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고 식민지시대 이래의 군부영향력 행사가 쿠데타 등을 통해 정면으로 부상, 정치공간에 군부통치의 자리를 확보한 것은 2차대전후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 군부들이 최근 30여년 동안「반공 십자군」으로 정치전면에 나서 군사 파시즘을 계속해온 배경을 이해하는데는 냉전체제의 논리가 지배한 미국의 대 중남미 군사·외교정책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2차대전후 파나마운하 지역에 설립한「미 육군 미주 학교」는「쿠데타 학교」라는 별명이 불어있다. 이 별칭은 워싱턴 당국과 라틴 아메리카군부의 관계를 부정적인 측면에서 잘 드러내 보여주는 뜨끔한 한마디이기도 하다.
이 군사학교는 l950∼1973년에 1백70명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원수·장관·군 지휘관·정보책임자와 6천4백명의 군 장교들을 교육시킨 것으로 집계돼 있다.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군사쿠데타 관련은 존슨 행정부의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국방부 보고에서『64년 굴라 정권을 무너뜨린 쿠데타를 일으킨 브라질 군장교의 80%가 미국에 의해 훈련받은바 있다』고 밝힌데서도 잘 드러나 있다.
우선 미국의 대중남미 군사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 정치학자 제임스 피트라스 박사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 군부는 라틴 아메리카 군부들에 군부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급소」를 구축해주고 교육시킨 뒤 미국의 경제적 이익 보호를 위해 그 군부를 이용함으로써 라틴 아메리카 정치체제의 심장부로 진입했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과 칠레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카를로스 프라츠 장군도 이와 똑같은 견해를 피력한 일이 있다.
페론은 재집권중인 73년 「미국은 국제정치를 요리하기 위해 정치세력보다는 군부를 장악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비난했고 아옌데 정권하에서 육참 총장을 하다가 피노체트 장군의 쿠데타로 아르헨티나에 망명 중 7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부인이 암살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한 프라츠 장군도 후일 멕시코에서 출간된 자신의 일기『준법의 일생』에서 똑같은 견해를 밝혔다.
프라츠 장군은 또 그의 일기에서「칠레의 군 장교들은 미 육군 미주학교 및 다른 미 육군훈련센터들에서 교육받는 것을 곧이곧대로 따르도록 가르침을 받아왔다』고 술회하고「이같은 교육을 받은 칠레 장교들이 조국을 해방시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미숙함과 무지·단견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 왔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미 경제이익 보호>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군 장교들에게 스스로를「선택된 소수」로 간주하도록 교육시키고 냉전의 위대한「반공 십자군」으로서 파시즘적인 통합주의를 부활시키도록 고무했다.
미 국방부의 라틴 아메리카 군 장교 교육과정은 우선 2차 대전 후 일본을 재건하면서 미 육군이 얻은 경험적 산물인「국가건설 개념」을 주입시켰다. 이같은 교육의 효과는 브라질군부가「국가 건설자」임을 앞세워 군사통치를 하고, 아르헨티나 군부가「국가 구제자」임을 자처하면서 권위주의적인 군부 독재를 휘두른데서 잘 나타났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군부가 도로·항만 건설과 같은 민간부문의 공공사업 프로그램에 군 장비를 동원하는 등의 방법으로「국가 건설자」로서의 군부 개념을 육성시키기도 했다.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 군부들을 국가 건설자라고 치켜세우면서 군사정치체제를 지원한 최대 동기는 군부를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반공 십자군으로서 신뢰하고자 한데 있다.
미국의 고무를 받아 더욱 우월감을 갖게된 군부의 국가건설자 개념은 농지개혁·민주정부 복귀 등과 같은 변화의 징조들을 기존질서에 대한 파괴로 간주했고 필요한 질서 수호를 위해서는 테러와 고문을 자행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미국은 이같은 라틴 아메리카 군부의 국가건설을 돕기 위해 막대한 예산의 무기와 훈련을 제공했다. 미 상원에 제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사교육과정이 브라질 장교들에게 가르친 주제들 가운데는 검열, 대중집회 조종, 테러 및 비밀작전, 밀고자 활용 등이 들어있다.

<테러까지 가르쳐>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군부 장악은 멀리는 미국의 대 중남미정책에 초석이 된 1823년의 먼로 독트린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본격적인 직접개입은 1947년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체결된 미주 상호원조 조약 때서부터 시작됐다.
이 조약에 따라 51년에는 외부의 군사위협을 막는 방위개념을 담은 군사원조 계획(MAP)이 수립됐다. MAP는 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 계획의 평가를 위한 드레이퍼 위원회를 소집한 후 크게 변질돼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 군사원조의 제1차 목적을 「외부위협 방위」에서 이 지역의 군사 지도자들에 대한「영향력 발휘」로 바꾸고 이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크게 강화했다.
우선 59년 쿠바 공산화 혁명 후 적극 개발된 반 게릴라전 프로그램들은 라틴 아메리카 군부 장교들에게 자신들을 국가수호의 엘리트로 여기게 고무하면서 고문과 테러·암살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이같은 워싱턴 당국의 정책에 따라 미 군사학교들은 라틴아메리카 군 장교들에게 광범한 행정 능력을 제공하는 교과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의 하나로 워싱턴 포트맥네이 기지에 있는 미주 국방대학(IADC)은 중남미 장교들에게 기업경영·금융관리·무역·국제금융 등을 교육시켰는데 69∼72년까지 이 대학 학장을 지낸 진 라로크 해군 제독은『우리대학은 학생들로 하여금 정부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이같은 미국의 대 중남미 정책을 따라 출현한 라틴아메리카 현대 군부국가들의 독재와 인권탄압을 지원한 중요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미국제개발처(AID)의 공공안전 프로그램.
AID프로그램은 60년대 초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의 10년 동안 브라질 경찰 10만명과 군 장교 6백명에게 최신 탄압기술과 고문방법을 워싱턴의 국제 경찰학교, 텍사스의 미 국경순찰학교, 파나마의 미 육군 미주학교 등에서 훈련시켰다. 60∼7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모든 군사정권들은 이들 미 군사학교들에 훈련생을 보냈다.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76년 브라질을 방문,「상호협의 협정」을 조인, 브라질을 최상급 동맹국화 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라는 미국의「위성」은 브라질을 중심으로 파라과이·우루과이·볼리비아 등을 묶는 또 하나의「소 위성」을 탄생시키면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제3세계 주요 무기 제조국으로 부상한 브라질에 미국의 역할수행이 이전됐다.

<기득권자 편에 서>
워싱턴 당국은 쿠바 공산화 이후 특별한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에도 반공주의자라고 주장하는 라틴아메리카 독재자들을 서슴없이 지원했고 이같은 공산주의에 대한 선입견의 결과는 엉뚱한 괴물인 중남미판 파시즘을 탄생시켜 폭력의 소용돌이를 몰아왔다.
수많은 쿠데타로 민선 대통령들을 축출하고 의회를 해산하면서 비상사태 선포, 대학 폐쇄, 정치범 추방 등을 자행하면서 선거후보에 나설 때 군복만 민간복으로 갈아입으면 그만이었던 라틴아메리카 군사파쇼.
이들 군사정권들은 군사파쇼유지를 위해 암살단·테러조직 등을 만들어 폭력을 제도화함으로써 경제발전의 중요 변수인「안정」을 해쳤고 다소간의 개발기여 공적에도 불구하고 건설적인 사회변혁의 기본세력이 되기는커녕 발전의 장애요인이 돼 오늘과 같은 경제위기를 몰아온 중요 원인의 하나가됐다는 비판을 받고있는 것이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군 지휘부는 전통적으로 지배세력 출신들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사회변혁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가난한 피지배계층 출신들이 군에 들어가 성장, 나름의 엘리트가 돼서 군사정권의 전면에 나선 다른 제3세계의 군사혁명과는 달리 라틴 아메리카의 군부는 출신 성분상 언제나 기득권자들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을 떨칠 수 없었고 개발이나 변혁에 필요한 사회계층의 변혁에서 우러나오는「역동성」을 제공하지도 못했다.
글 이은윤 특집부장 문일현 기자
사진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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