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소년의 자살(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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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4일 오후1시30분. 서울 상암동 삼동소년촌(원장 김종원ㆍ53ㆍ여)내 작은 동산 아카시아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박용문군(13ㆍ상암국6)의 돌연한 죽음은 이 소년촌 원생들에게 또하나의 슬픔과 함께 큰 충격을 주었다.
자신의 담임 보육사 이모씨(25ㆍ여)의 사직소식을 들은지 2시간뒤. 그전까지만해도 눈빛 초롱초롱하던 명랑한 박군은 이렇게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있었다.
이 소년촌원장 김씨가 60명의 원생들을 마당에 모이게한 뒤 8월1일 약혼과 함께 결혼준비를 위해 이 날자로 소년촌을 떠나게 된 이선생님의 송별식을 가진후 였다.
『공부 열심히하고 늘 정직하게 살아주고… 가더라도 자주 들르겠다』는 이교사의 마지막 당부가 울먹임으로 채 끝을 맺지 못하자 어린 아이들도 끝내 눈물을 이기지 못하고 훌쩍였다.
그러나 송별식장에서 눈물한방울 비치지 않았어도 전날 일기장에서 『나는 친구들과 방학숙제를 하는 시간이 제일좋다. 내일은 무얼 하고 놀까. 아니 숙제해야지. 꼭 열심히 해야지』라고 적으며 유난히 정을 그리워했던 박군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았던 선생님과의 이별이 그토록 충격적이었다.
박군이 이 소년촌에 들어간 것은 87년11월.그해초 행려병자로 아버지가 숨진데다 어머니의 가출이 겹쳐 생활능력이 없는 할아버지가 박군과 동생 용일군(12) 형제를 시립상담소에 위탁,함께 이 소년촌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나마 오직 믿었던 할아버지마저 지난해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는 행방을 알수 없는 상태.
『88년1월 신학교보육학과를 졸업한 이교사가 부임하면서 이교사의 따뜻한 보살핌속에 엄마처럼 따랐어요.』 소년촌원장 김씨의 얘기.
때문에 생활지도와 의복관리는 물론 병간호에서 남모르는 고민의 상담에 이르기까지 친어머니이상의 사랑을 실천해온 이교사와 어쩔수 없이 헤어지게 된 것이 어린 박군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주변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부모와의 생이별,그후의 외로움과 역경속에 유일하게 의지해 왔던 선생님과의 「제2의 이별」이 싫어 죽음을 택한 박군의 사건은 모두에게 또한번 모정의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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