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과 통독(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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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콜 서독총리에 관한 유머에 이런 게 있었다.
콜총리ㆍ대처 영국총리ㆍ체르넨코 소련공산당서기장ㆍ호네커 동독공산당서기장 이렇게 네 사람이 한 술집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먼저 체르넨코가 웃옷을 벗어젖히고는 털이 무성한 가슴을 드러내 보이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기 울창한 타이가(침엽수림)가 있소.』
대처총리도 지지 않고 가슴을 내밀면서 말했다. 『신사 여러분,여기 두개의 훌륭한 영국파운드가 있습니다.』 물론 파운드는 영국의 화폐단위지만 무게의 단위도 된다.
잠시 머뭇거리던 콜총리가 갑자기 바지를 훌훌 벗고 엉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분단된 독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독일 영토가 그렇게 큰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때 호네커서기장도 뒤늦게 일어서더니 콜총리와 마찬가지로 바지를 벗어 내리면서 외쳤다. 『여기 튼튼한 대문의 빗장이 있습니다. 맹세컨대 이 빗장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는 없지요.』
그러나 그 유머는 유머로만 끝난 것이 아니다. 체르넨코가 자랑했던 소련의 밀폐된 타이가는 개방과 개혁의 물결속에 서서히 그 베일을 벗고 있으며,대처가 자신만만하게 들먹였던 영국의 파운드도 그 위력을 상실하고 있다. 더구나 호네커가 그렇게도 장담했던 동독의 튼튼한 빗장은 베를린장벽과 더불어 하루 아침에 벗겨지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콜총리의 엉덩이처럼 큰 통일된 독일의 모습이다.
그래서 유럽의 일각,특히 영국에서는 겉으로는 독일의 통일을 환영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은근히 두려워하는 눈치다. 독일 영토도 영토지만 경제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 경계심의 단적인 표현이 바로 니컬러스 리들리 영국통산장관의 망언으로 나타났다.
그는 영국의 한 시사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EC경제통화동맹이라는 것은 전유럽장악에 조준을 한 독일 미사일』이라고 지적,독일의 경제력을 비아냥거렸다.
그런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리들리는 애꿎게 프랑스를 『독일인의 장화를 핥는 강아지』로 비유,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결국 그는 장관자리를 물러나고 말았지만 그의 망언을 유럽정가에 적지않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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