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출신·독신」전통 변화조짐|이대 총장후보 2명 선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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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화여대는 정의숙 총장 사퇴발표에 따른 후임총장후보선출 투표결과 해방이후 45년간 계속돼 온「본교출신 독신 총장」전통이 일단 이어지게 됐으나 이번 투표를 계기로 약간의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대는 29일 오전 전체교수회의를 열고 윤후정 교수(58·여·법학대학원장)와 김숙희 교수(53·여·식품영양·전 가정대학 장)등「이대출신 독신교수」2명을 제10대 총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에 따라 내주 중에 열리는 재단이사회는 두 교수 중 한 명을 차기 총장으로 지명하게 되며 앞으로 6년간은 기존의「전통이 유지되게 된다.
이날 전체교수 4백18명중 3백57명이 참가한 투표에서는 1차 투표 결과 윤 교수(1백75표), 김 교수(52표)를 비롯, 장 상(51·여·기독교 학·46표), 신옥희(55·여·철학·인문과학대학 장·12표), 모혜정 교수(51·여·물리·자연과학대학 장·10표)등 26명이 득표했다.
교수회의는 이어 최다득표 자 5명을 상대로 2차 투표를 실시, 윤·김 두 교수를 차기 총장 후보로 선출했다.
두 후보의 2차 투표 결과는 지명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대가 총장선출과정에 교수회의의 의견을 반영하는 민주적 절차를 도입한 것은 1886년 개교한 이래 1백4년만에 처음이다.
이 학교는 구한말 및 일제시대에는 1대 스크랜튼, 6대 아펜젤러 등 외국인 선교사 교장시대를 거친 뒤 해방이후 7대 김활란, 8대 김옥길, 9대 정의숙 총장 등 이사회의 일방적 임명에 의한「이대출신 독신 총장」시대를 맞아 왔다.
학교관계자들은 1차 투표에서 당초 예상대로 윤·김 두 독신교수가 1, 2위를 차지했지만 기혼인 장 교수가 46표를 얻어 2위와의 차이가 6표에 불과한 3위를 차지했고, 역시 기혼인 신·모 교수도 5위 이내에 포함된 것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10표 미만 득표자 21명 가운데 남자교수가 포함된 것도 남자 교수수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백98명에 이른다는 사실과 관련지어 의미 있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 교수는『어차피 앞으로 6년간은 전통이 지켜지겠지만 사회전반의 다원화 추세에 따라 머지않아 기혼 또는 타교출신 총장의 출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또 일부에서는 이날 투표결과와 관련해「이대 생은 반드시 미혼이어야 한다」는 학칙도 신중히 재고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학교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의 새로운 총장선출방식은 지금까지 총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해 왔던 이사회가 20일 정 총장사퇴발표이후「결단」을 내림으로써 구체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의 방침이 전달된 직후인 21일 정 총장은 11개 단과 대 교수 대표와 학무처장 기획조정실장 등 13명으로 된「신임총장 후보선출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준비 위」는 이에 따라 후보자 등록 없이 전 교수를 대상으로 1차 투표에서 최다득표 자 5명을 뽑고 2차 투표에서 이들 중 최다득표 자 2명을 선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선출규칙을 마련, 교수회의의 의견을 거쳐 23일 공표 했었다.
이날 새로운 총장선출방식을 실험한 교수회의는 일부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잡음 없이 민주적으로 치러져 전통의 명문사학답게 성공작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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