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도로가 앗아간 눈(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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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파이프 하나 놓더라도 눈으로 수평을 재야하는데….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택시를 타고가다 서울 청계천 고가차도 위에서 도로에 괸빗물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눈을 잃고 서울 평동 고려병원 621호실에 입원해 있는 임병후씨는 절망속에 빠져있다.
임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19일 오전5시쯤.
이날 서울지방에 내린 호우는 빗발을 늦추지 않았고 임씨가 탄 택시는 3ㆍ1고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림동 고모집에 들렀다 오전6시 공사판일을 나가기 위해 부인과 아들(5)이 기다리는 전농동 사글세방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청계6가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앞서 달리던 승용차가 차선 중앙부에 잔뜩 괴어있던 물을 가르면서 물살이 택시앞 유리창을 덮쳤다. 택시는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이어 중앙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20여m 미끄러지면서 마주오던 스텔라택시(운전사 이재언ㆍ32)와 충돌,앞자리에 탔던 임씨의 눈위로 깨진 유리조각이 덮쳤다.
병원으로 긴급이송된 임씨는 얼굴을 30여바늘 꿰매고 왼쪽 눈은 결국 실명했으며 시력1.5이던 오른쪽 눈도 겨우 사람만을 알아볼 정도가 됐다.
스텔라택시 운전사 이씨와 승객 이규현씨(26ㆍ대학원생)도 각각 전치2주,10일씩 부상했다.
경찰조사결과 사고지점의 가로 20㎝,세로 20㎝의 배수구가 오물로 막히는 바람에 도로에 이같이 물이 차 교통사고를 유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불가피성이 참작돼 사고택시 운전사 송진섭씨(48)는 불구속 처리됐지만 진짜 피해자인 임씨는 잃어버린 눈을 보상받을 길이 없다.
결국 서울시의 도로관리 잘못이 안겨준 한 시민의 불행이었다.
패어져나간 아스팔트,배수구가 막힌 간선도로­. 이같은 부실이 방치된다면 임씨같은 불행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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