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망치는 「억지 유학」/고졸생들 무턱대고 해외보내 부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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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언어장벽ㆍ현지생활 적응 못해/약물복용에 정신병까지/학업 포기하고 귀국… 입원환자도 늘어나
최근 고교졸업생들의 「해외유학」이 크게 늘고있는 가운데 이들중 상당수가 「억지유학」으로 언어장애 등 현지 적응을 못해 학업을 포기,조기귀국하고 약물복용 등 탈선을 일삼거나 일부는 정신이상 증세까지 일으켜 병원에 장기입원하는 등 부작용이 빈발,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해외유학 문호가 확대 개방되고 국내대학의 입시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짐에 따라 성적이 부진해 국내대학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의 「도피성유학」 또는 외국대학을 선호해 성급히 유학한 학생들중 언어장벽에 부닥치거나 갑작스런 문화ㆍ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특히 이들중 심한 경우 현지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젖어 약물복용 등 일탈행동을 일삼거나 자살충동ㆍ우울증ㆍ피해망상증 등 정신분열증세를 보여 신속ㆍ적절한 보호조치와 치료가 시급하다.
문교부에 따르면 해외유학 문호가 확대 개방된 이후 자비유학생(대졸ㆍ고졸)이 급증,88년의 경우 전체 2천8백14명중 고졸자가 6백52명이던 것이 89년 전체 1천9백81명중 고졸자가 1천7백46명(88%)으로 1년사이 2.7배나 증가했다.
또 올 상반기에는 전체 9백19명중 고졸자가 1백76명으로 집계됐다.
89년 대학진학에 실패한 윤모군(19)은 같은해 3월초 성급히 미국의 모대학 랭귀지스쿨에 등록했으나 어학실력부족으로 그해 가을 대학입학이 어렵게 되자 깊은 좌절감과 유학을 보내준 부모의 과잉기대가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마리화나 등 약물을 과다복용하는 등 자포자기 상태에서 탈선의 길로 접어들었다.
윤군은 이를 뒤늦게 안 부모의 종용으로 지난3월 귀국,즉시 병원에서 정신진단을 받고 정신질환치료 및 약물치료를 받고있다.
윤군을 치료한 모병원 신경정신과 김현우박사(한국정신분석학회장)는 『유학에 실패해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경우 약물남용 등 비행과 사회에 대한 공포증ㆍ피해망상증 등이 대표적으로 나타나며 사람에 따라서는 자살출동도 일어난다』며 『윤군의 경우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인 만큼 어린 나이에 이국에서 겪은 좌절이 너무 컸다』고 밝혔다.
또 김모군(19)의 경우 고교재학시절 성적이 중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일류대진학엔 역부족,사업을 하는 부모가 『명문대 못갈바에야 유학가는게 훨씬 낫다』고 적극 권유해 충분한 준비없이 89년8월 미국의 모대학에 진학,한 학기를 간신히 마치고 새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가족들에게 아무런 연락없이 지난3월 돌연 귀국해 2개월간 정신과병원에서 치료받았다.
김군도 윤군과 비슷한 문화충격ㆍ고독감을 느낀데다 새학기시작에 대한 공포심이 작용,일종의 도피수단으로 귀국해 버렸다는 것.
서울시내 종합ㆍ개인병원에 따르면 이같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유학중단 학생들은 종합ㆍ대학병원의 경우 4∼5명선에 이르고 있으며 개인병원의 경우 보다 은밀한 치료와 상담을 원하는 학생들이 많이 찾고있다.
경희의료원 정신과장 장환일박사(58)는 『이들의 문제는 단순히 부모나 학생개인의 문제가 아닌 교육에 대한 사회전반의 문제』라고 진단하고 『교육제도 및 대학의 역할,사회충원시스팀의 재검토가 필요하며 학부모들의 과잉교육열도 자제돼야 유학문호개방이란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상일ㆍ김남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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