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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이대론 미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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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6년 한국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가 끝나고 이번 주부터는 포스트 시즌이다. 정규시즌 내내 삼성 라이온즈가 선두를 유지한 뒤끝이긴 해도 막상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 단기전의 속성이라 '가을 야구'의 진미는 결코 '가을 전어'에 못하지 않을 게다. 하지만 올해에도 한국 프로야구는 전반적으로 쇠퇴의 기미가 역력했다.

지난 3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할 때만 해도 올 프로야구에 대한 기대는 예년과 사뭇 달랐다. 요 근래 밀어 닥친 월드컵 축구 열풍과 스타급 선수들의 잇따른 해외 진출에 따라 국내 프로야구는 인기와 흥행 모두 침체일로에 빠져 있던 터였다. 그리하여 올 프로야구는 1996년 이후 10년 만에 400만 관중 돌파를 목표로 삼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넌트 레이스 동안 프로야구 관중 수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12%가량 줄었다. 2년 연속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삼성의 경우 이번 시즌 관중은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감소했다. 사실상 게임당 평균 4000명 이하의 관중 수는 웬만큼 유명한 프로골퍼들이 몰고 다니는 갤러리 숫자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얼마 전 쿠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6년 만에 우승했다는 낭보도 국내 프로야구의 현실 앞에서는 머쓱할 따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서는 야구 자체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제공하는 진정한 재미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야구를 포함한 국내 프로스포츠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프로스포츠가 크게 활성화돼 있는 나라들의 경우 구단의 거점은 도시나 지역이며, 그것을 움직이는 힘은 궁극적으로 지자체 및 주민들의 열성적인 참여다. 봉건제나 지방분권의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일수록 프로스포츠가 더 융성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재벌연고제 형식으로 출범한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은 단지 부차적일 뿐이다. 그러기에 SK 와이번스는 인천 출신 선수가 고작 3명인데도 그곳을 자신의 연고지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며, 지역연고를 서울로 옮기겠다며 인천을 떠났던 현대 유니콘스가 수년째 수원에 머무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긴 대기업들이 특정 도시가 아니라 전국 도처를 사업장으로 삼고 있는 마당에 그들이 주도하는 프로야구에서 명실상부한 도시연고제를 기대하는 것부터 애당초 무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도 시.도별 실질 지역 내 총생산 증가율을 보면 경기도와 충남.울산이 각각 1, 2, 3위를 차지했는데 여기에는 해당 지역에 위치한 삼성 및 현대 계열회사의 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연고 도시 고유의 '장소성'(placeness)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 관중의 숫자로 표현되는 팬들의 성원이 구단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절박한 것도 아니다. 구장의 시설 개선이나 돔 구장 건립 또한 내심 시급할 턱이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모기업의 광고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프로선수들은 지역 팬들이 아니라 구단기업을 위해 뛰는 존재에 가깝다. 선수들의 유니폼이나 헬멧에까지 모기업의 자동차나 전화기, 혹은 아파트 광고를 아로새기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현주소 아닌가.

대기업 연고중심인 현재의 한국 프로야구는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모든 국민에게 밝고 건강한 여가 선용을 제공'한다는 존재 이유에 부응하기 어렵다. 취임 이후 청와대 출입은 하면서도 아직 한번도 찾지 않은 구장이 반 가까이 된다는 '낙하산' 총재로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소임 또한 무색할 뿐이다. 프로야구의 조용한 침몰을 지켜보는 착잡한 마음에는 82년 출범 당시의 '태생적 한계'만 계속 거론할 여유나 시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