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글은 없다, 이미지만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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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바다'라는 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표현하는 한마디다. 나무를 만지고 느끼기보다 나무를 찍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먼저 나무를 안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몸으로 다가가기보다 본다는 정지 상태에서 기쁨과 위안을 느낀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이미 1931년에 "미래의 문맹인은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예언한 것은 우리 시대 '보기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트앤북스(www.artnbooks.com)가 펴낸 '아이콘 시리즈'는 글을 버리고 사진과 그림을 텍스트로 삼았다는 점에서 시대 흐름과 독자들 취향을 따라잡은 감이 재빠르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예술과 디자인 전문출판사로 이름난 독일의 '타셴'이 기획한 65권 짜리 '아이콘 시리즈' 가운데 사진.미술.건축.디자인.라이프 스타일 등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를 골라 김우룡.노성두.안규철씨 등 작가와 미술사가가 번역했다.

이 시리즈가 내세운 "말이 필요 없이 바로 보여준다"는 자신감은 이제 만남이 이미지의 떠다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 '에일리언'으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은 H R 기거의 작품 세계를 다룬 '기거', 지난 1백70년 사진사에 길이 남을 중요작 40장을 가려 뽑은 '포토아이콘 1.2', 초현실주의 사진을 창조한 만 레이(1890~1976)의 삶과 작품을 담은 '만 레이', 당대 미술과 건축의 면모를 각기 87명 작가들로 훑은 '오늘의 예술가들'과 '오늘의 건축가들', 컴퓨터 그래픽이 창조한 다소 에로틱한 여성 디지털 캐릭터들을 모아 놓은 '디지털 뷰티', 세계 곳곳의 낙원 같은 바닷가 풍광 사진 모음 '시사이드 스타일' 등 넘쳐나는 이미지가 눈을 배부르게 만든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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