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르비 “꼭 만나고 싶었다”/한­소 정상 만나던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시간 늦게 시작 65분 대좌/소 회담직전 「사적 만남」 강조/한­미­소 경호원 몰려 호텔주변 삼엄
○사진사 1명씩만 입장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회담은 예상보다 1시간여 늦은 5일 오전 9시15분(한국시간)부터 1시간5분간 진행.
회담장인 페어몬트호텔 신관 23층 회의장에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게 소련측 대표들이 입장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보다 5분 늦게 들어섰다.
고르바초프대통령에 이어 우리측 배석자들이 입장하고 곧바로 9시15분쯤 노태우대통령이 들어서 회담을 시작.
이날 회담장에는 기자들의 출입이 일체 통제됐고 양측의 사진사 1명씩만 기록용 사진을 찍기 위해 입장시켰다.
○노대통령 만족한 표정
○…회담이 열린 페어몬트호텔 스위트룸은 한쪽 창이 태평양을 면해 있는 방으로 노대통령이 창을 향해,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을 등뒤로 해 양측 배석자와 나란히 착석.
회담시작직전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바쁜데도 만나뵙게돼 반갑다』고 인사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나도 바쁘지만 꼭 노대통령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인사.
노대통령은 회담서두에 창밖의 태평양을 가리키며 『저 거너편에 우리 한반도ㆍ소련,그리고 아시아가 있는데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을 멀리 보면서 태평양서쪽의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자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지역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지역이며 이곳의 평화와 번영은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화답.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회담을 과일에 비유,『우리가시작한 새로운 시발을 잘 익도록 해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먹도록 성숙시켜 나가자』고 말하는등 회담 중간중간에 양국 대통령은 위트와 유머도 섞어가면서 화기로운 회담을 진행했다고 이수정대변인이 전언.
특히 두 정상은 모두 회담내용와 결과에 매우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이대변인은 전했는데 회담후 노대통령의 표정에서도 흡족한 감이 역력.
그러나 이대변인은 이날 회담시간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일정때문에 1시간에 불과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듯 『두 대통령이 요점을 얘기했고 통역도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며 회담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것이었음을 애써 강조.
○…당초 이날 오후 6시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캄차카로 향할 것으로 얄려졌던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일정이 순차적으로 늦어져 노대통령과의 회담이 오후 6시20분에야 끝나자 서둘러 회담장을 떠났는데 노대통령과 헤어지면서 『시간때문에 아쉽다. 오랜 시간의 비행계획이 남아있고 떠나는 일정이 급해 정말 아쉽다』고 말하며 『오늘 우리의 만남은 건설적인 양국관계의 출발』이라고 다시한번 의미를 강조.
○대소차관 검토한 적 없다
○…한소 정상회담과 노태우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뒤 이대변인은 한국기자들에게 별도로 회담내용을 발표.
이대변인은 『이날 회담은 아주 솔직하면서 의례적인 것이 아니고 핵심문제에서 상호입장을 충분히 전달,합의를 도출한 만남이었다』고 소개.
이대변인은 『두 정상은 모두 양국관계에 있어 두 사람의 만남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며 『이날의 만남이 이미 한소 관계정상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7개항의 합의문을 소개.
이대변인은 발표가 끝난 뒤 기자들과 간략한 일문일답을 진행했는데 연내 수교가능성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답변할 사항은 아니며 양국간에 협의되어야 할 문제』라고만 말하고 『양국의 오랜 단절과 불행했던 과거를 정리하는 큰 계기로 보면된다』고 조기수교를 간접 시사.
또 주한미군 감축등 아시아지역의 군축문제가 논의됐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 이대변인은 대소 차관문제에 대해서도 『차관요청은 당초부터 없었으며 검토된 바도 없다』고 강조.
○일 기자 지명 질문받아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양국 정상회담이 끝난 지 40분만인 오전 11시 정각(한국시간)에 시작,노대통령의 준비된 성명서 발표와 기자들의 일문일답으로 35분간 진행.
감색 양복을 입은 노대통령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의 결과가 당초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듯 환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인 페어몬트호텔 1층 베네치아홀에 입장한 뒤 곧바로 노창희청와대의전수석 통역으로 기자회견을 시작.
노대통령은 이번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만남이 한반도 냉전의 얼음을 깨는 첫걸음이라는 내용등 중요대목에 이르러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응시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노대통령은 7쪽의 성명서를 20분가량 읽어 내려간 다음 한국기자 2명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 기자,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 기자등 4명의 질문을 차례로 받고는 상세하게 답변.
노대통령은 마지막 질문자인 파이낸셜 타임스지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끝나자 『여러분을 기다리게 한데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보너스로 한분만 더 질문받겠다』고 조크,굳어있던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일순 바꾸는 여유를 보이기도.
노대통령은 여러 기자들이 손을 들어 질문을 신청하자 기자회견장에 일본기자들이 많음을 고려한듯 『일본기자가 좋겠다』고 제의,공동통신의 후쿠지마 기자가 덤으로 막차를 타는 행운.
이날 회견장에는 세계 4대통신과 미국의 3대TV,일본의 주요언론등 외신기자 2백명,내신기자 1백40명 등 3백40명의 내외신기자들로 성황.
○고르비는 피곤한 표정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스탠퍼드대 강연을 마치고 예정보다 40분정도 늦은 오후 3시30분쯤 페어몬트호텔에 도착,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예정됐던 일정인 미 경제인초청 오찬연설회에 참석.
이보다 앞서 오후 5시정각 주미소련대사를 비롯한 소련측 참모들이 회담장으로 올라갔으며 우리측 배석자들은 노대통령과 함께 회담장에 입장.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미 경제인 오찬장인 본관에서부터 복도를 따라 30여m 걸어와 회담장인 신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회색 더블버튼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꽉 짜인 일정때문인지 다소 피곤한 표정.
○…이날 회담장에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국빈으로 방미했기 때문에 모든 편의시설 이용의 우선권을 소련측이 행사해 모든 엘리베이터 사용이나 경호절차를 소련측이 전담.
소련측은 이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회담장인 23층으로 올라간 후 회담장소를 정리한다는 이유로 우리측 경호원들과 수행원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도록 막았는데 노대통령이 숙소인 본관 7층에서 내려와 회담장이 있는 신관쪽으로 걸어오자 소련측 경호원들은 당황해 하며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안내.
그러나 우리측 수행원 일부는 정원이 6명인 이 엘리베이터에 노대통령과 함게 탑승하지 못하고 뒤늦게 내려운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느라 소련측 경호원들과 우리측 경호원들 사이에 약간의 승강이.
○…이날 회담에는 당초 양측에서 6명씩,미국측에서 3명등 모두 15명의 기자와 공식사진사 2명이 들어가기로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소측에서 일체의 기자취재는 불허하고 공식사진사 1명만 허용한다고 통보해와 우리측은 당황.
청와대 한 관계자는 『소측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 개인의 뜻이라고 통보해왔다』고 전하고 난감해하는 표정.
이같은 정상적인 외교관례를 벗어난 소측의 태도를 두고 우리측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북한을 의식해 미 경제인들과 만나러 페어몬트호텔에 왔다가 우연히 노 대통과 만나는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니냐고 분석.
○도브리닌과 실무접촉
○…우리측 외교팀은 정상회담 하루전날인 4일 오전 9시쯤 도브리닌 소대통령 고문이 페어몬트호텔을 찾아올 때부터 본격적인 정상회담 실무준비 작업에 돌입.
노재봉비서실장은 도브리닌과 이날밤 늦게까지 시전준비절차를 협의,배석자ㆍ회담시간ㆍ언론관계 등을 절충했는데 도브리닌은 워싱턴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수행하지 않고 직접 샌프란시스코로 왔다는 것.
배석자는 양측이 5명씩 하기로 했고 의제는 당초 이야기한 대로 의제를 정하지 않고 자유토론식으로 하기로 했다.
○오찬들면서 심경 피력
○…노대통령은 4일 낮 (한국시간 5일 오전) 숙소인 샌프란시스코 페언몬트호텔에서 수행중인 최호중외무장관ㆍ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 등 공식수행원들과 오찬을 같이하며 한소 정상회담을 갖는 심경과 의미를 설명.
노대통령은 통일문제에 언급,『우리의 통일은 남북한 당사자가 자주적으로 이루어야 하겠지만 독일의 경우를 보면 동ㆍ서독뒤에 미ㆍ소ㆍ영ㆍ불 등 주변 4강이 관련되어 있다』면서 『우리의 통일도 남북한뒤 에 미ㆍ소ㆍ일ㆍ중 등 4강이 있어 2+4의 형태가 되어있기는 마찬가지』라면 88년 유엔연설에서 제의한 동북아 6개국 평화회의의 당위성과 현실성을 강조.
노대통령은 이와관련,『우리도 통일은 자주적으로 해야 하나 통일의 환경은 2+4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유엔의 연설,일본방문,소련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앞으로는 중국ㆍ북한과의 관계개선만을 남겨놓고 있다』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
○헬기 동원해 입체경호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페어몬트호텔 안팎은 한ㆍ미ㆍ소 3개국비밀경크호원들로 붐벼 삼엄한 분위기.
특히 소련 경호원들은 경비견을 이끌고 수시로 로비를 돌았다.
페어몬트호텔은 4일 아침부터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됐고 고르바초프가 샌프란시스코 상의회원들을 상대로 오찬연설을 하기 위해 호텔에 도착한 후에는 헬기가 호텔상공을 선회.
한편 고르바초프가 숙소로 쓰고있는 소련 총영사 관저에도 경찰이 통행을 제한하고 인근의 맨홀등을 샅샅이 조사했으며 소측의 보안요원들이 지붕에까지 올라가 감시.<샌프란시스코=특별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