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롱게스의 왕자(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오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한소 정상회담은 분명 우리 근세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다.
한국과 소련의 첫 국교는 1884년에 정식으로 맺어졌지만 인적교류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다.
한국인과 러시아인과의 최초의 만남은 언제 어디서 이루어졌을까. 우선 서양쪽 기록을 보자.
1246년 7월 당시 몽고 수도 카라코룸 하궁에서는 몽고 제3대 군주 정종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는 많은 외국의 축하사절이 참석했는데 그 가운데는 교황 이노센트4세의 사절인 카르피네란 신부도 있었다.
그 카르피네신부가 남긴 수기를 보면 즉위식 참석인사 가운데 러시아 수스달공국의 대공과 솔롱게스 왕자가 들어있다.
솔롱게스란 몽고어로 고려 또는 고려인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 수기는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최초의 기록으로 봐도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의 왕자는 누구인가.
몽고의 침략으로 1241년 4월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조정은 몽고와의 휴전협상 조건으로 종실인 영녕공 왕준을 귀족자제 10명과 함께 몽고에 볼모로 보낸다. 1245년에는 왕준의 사촌인 신안공 왕전이 또 몽고에 간다. 그러므로 카르피네의 수기에 나오는 솔롱게스의 왕자는 바로 이들 형제가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이것은 만남의 개연성만 있을 뿐 실제로 어느 정도의 접촉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양측 기록에 나오는 러시아와의 최초의 접촉은 전투로 시작된다.
17세기 우랄산맥을 넘은 러시아인들은 동진을 계속,시베리아대륙을 횡단하여 청국과의 접경인 흑룡강까지 진출한다. 그리고 그들은 청의 보호밑에 있는 흑룡강유역의 원주민을 괴롭힌다.
보다못한 청국은 1652년 6월 병력을 동원하여 일전을 벌이지만 화력의 열세로 참패를 당한다. 이 싸움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이른바 중소 국경분쟁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청은 병력을 정비하여 1654년 대반격작전을 벌이는데 여기에 조선군이 참전한다.
청의 『세조실록』에는 청국의 출병요청을 받고 변급을 영장으로 하여 1백52명의 병력을 파견,적을 흑룡강에서 몰아냈다는 전과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과 러시아와의 첫 만남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