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정치, 入山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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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몇 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우리나라 관광업계는 돈줄이 많이 풀린다.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이 버스를 전세내 유권자들에게 선심관광을 시켜주기 때문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선거철이면 평일에도 차고에 쉬는 차들이 없을 정도다. 고속도로 휴게소 역시 대만원이다.

좀 역설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산을 참 좋아한다. 산악회나 등산모임 몇개씩은 다들 운영하고 있다. 겉으로는 다른 사람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줄을 따라 가보면 특정 정치인에게 닿아 있다. 그 산악회 덕분에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된다.

선거철이 가까워질수록 산행은 뻔질나게 이루어진다. 이름은 '산행'이지만, 대개는 유권자들을 매수하려는 선심관광이다. 비교적 순수하게 운영돼온 산악회마저 선거철이 되면 그들의 마수에 쉽사리 걸려들어 버스임대료나 점심값 등을 협찬받는 예가 적지 않다. 이 경우라도 본인은 장막 뒤에 숨어 나오지 않고, 대개는 보좌관이나 하수인들이 행사를 주관한다. 선거법에 걸려도 본인은 결코 다치는 법이 없다.

선심관광은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버스 20대는 기본이다. 심지어 50대까지 동원된 경우도 있다. 참가자들은 거의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모셔진(?) 유권자들이다. 입심 좋은 이가 나와 알 듯 모를 듯한 논설을 풀면 산악회 가입신청서가 쭉 돌려진다. 기실은 나중에 후원회나 당원 명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수건을 비롯해 '당원용'이라는 글자가 찍힌 갖가지 기념품이 돌려진다. 참가자들은 졸지에 당원이 되는 것이다. 45인승 관광버스 50대라면 줄잡아 2천명이다. 1m 간격으로 두명씩 줄을 서서 가도 선두에서 끄트머리까지는 장장 1㎞가 된다. 도저히 등산이 불가능한 행렬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애초에 등산을 목적으로 한 산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미리 정해진 현장이 있다. 숲속이나 계곡가에 2천명이 빼곡히 들어찬다. 환경용량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곧바로 대형 앰프가 설치되고, 몇몇 인사의 속 보이는 인사말이 끝나면 먹고 마실 것이 대령된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물의 양도 대단하거니와 버리는 쓰레기 양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선심관광일수록 돌아오는 버스칸은 흥청망청이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관광버스 기사는 두둑한 팁 앞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노래방 기기를 서비스한다. 차창마다 커튼을 둘러치고 야릇한 조명 아래 뽕짝을 메들리로 부르다보면 이 사람 저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느새 버스는 '달리는 카바레'로 변한다.

우리 정치가 밤낮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그런 선심관광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치에 오염된 사이비 산악문화는 이제 국민의 힘으로 퇴출시켜야 할 때다.

김재일 두레생태기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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