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군부장악… “세습 길닦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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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 인민회의 권력구조 개편 의미/빨치산세대ㆍ기술관료 중용/통일정책위 신설… “한국통” 윤기복 기용은 주목
24일 열린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는 김일성 중심의 「유일적 영도」체제와 김정일 후계체제를 더욱 공고화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권력구조면에서 김일성이 국가주석에 재선출되는등 인사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김정일이 국가주석 또는 부주석으로 선출될지도 모른다는 일부 관측을 뒤엎고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권력구조개편에서는 항일빨치산세대가 여전히 중시되고 경제등 각부문의 테크너크랫의 진출이 두드러진 점도 또다른 특징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권력구조개편을 살펴보면 김일성이 국가주석에 재선출됐고 부주석 이종옥ㆍ박성철,정무원총리 연형묵이 그대로 유임되어 권력최상층부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정무원내에서도 전직부총리 8명 가운데 정준기가 해임되고 최영림(국가계획위원장겸)ㆍ김달현(대외경제위원장겸)ㆍ장철(문화예술부장겸) 3명이 신임부총리로 임명됐을 뿐이고 부장급에서는 2명(자원개발부장ㆍ해운부장)만이 새로 기용되는데 그쳐 김일성체제의 건재를 그대로 반영했다.
○김일성 유고 대비
이번 개편에서 김정일의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임명은 ▲확대개편된 국방위원회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아 그의 「군에 대한 통제권」이 한층 강화됐다는 점 ▲「김일성의 유고」라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군에 관한 일상업무까지 김정일이 관장하게 함으로써 후계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려고 한 점 ▲지금까지 정치국 상무위원ㆍ비서ㆍ군사위원 등 당직책만 맡았던 김정일이 국방위원회의 직책을 맡음으로써 「국가기관직책」을 처음 담당하게 됐다는 점등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더욱이 김정일밑의 부위원장과 위원들로 오진우ㆍ최광ㆍ김철만ㆍ김광진 등 빨치산세대를 배치해 「2세대」에서는 어느 누구도 군통수권과 관련,김정일에 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없도록 조치한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당비서직에서 해임된 허담의 거취와 관련,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좌천」과 「다른 주요 직무수행」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하고 있다.
다만 허담이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에 유임됨으로써 앞으로 북한이 대외ㆍ대남 정책에서 최고인민회의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포석이 아닌가하는 관측도 있다. 이같은 관측은 이번에 당국제담당비서로 승진한 김용순이 허담밑에서 부위원장직을 수행하도록한 점이나 최고인민회의내에 새로 통일정책심의위원회를 신설한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통일정책심의위원장에 현재 당비서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인 윤기복을 기용한 것도 그가 남한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라는 점과 함께 주목된다.
북한이 이같이 최고인민회의의 외교적 역할강구는 「이념」 중심의 당외교보다 「실리」 중심의 국가 및 의원외교가 중시되는 국제환경의 변화를 감안한 측면과 대서방외교를 확대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념보다 실리중시
이번 권력구조 변화에서 최광이 정치적 후보위원에서 정위원으로 승진했고 오랜 공백기간을 깨고 김철만과 최영림이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재부상한 것은 빨치산세대의 중용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인 한성룡이 정치국위원으로,대외경제 전문가인 김달현이 부총리로 각각 승진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64.5%가 테크너크랫들로 채워진 것은 북한에 테크너크랫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해 북한사회에도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유영구기자〉
◎김일성연설에 비친 시정내용/사회주의 고집속 외교노선 다양화추구/한국 유엔가입 가능높자 변칙적 제안
24일의 북한최고인민회의 9기 1차회의에서 주석으로 재추대된 김일성이 시정연설을 통해 밝힌 대내외정책은 총체적으로는 기존노선을 유지하면서 각론에서는 현재 처한 입장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가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일성은 이날 ▲남북불가침선언ㆍ북­미평화협정체결ㆍ미군의 단계적 철수 등을 통한 긴장완화 및 평화적 환경조성 ▲콘크리트장벽 철거 및 자유왕래 ▲정당ㆍ사회단체 및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남북대화 등 그동안 주장해온 대남정책을 총괄,네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통일이전이라도 남북한이 하나의 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하자고 제의한 것과 금년도 신년사에서 언급됐던 「최고위급당국 및 정당수뇌협상회의」 개최 제안이 없어진 것이다.
북한은 유엔가입 문제에 대해 그동안 통일후 단일국호하에 유엔가입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새로운 「변칙적 제안」을 하게된 것은 한국의 북방정책으로 유엔 단독가입의 가능성이 점차 고조되고 있고 동시가입국인 동서독이나 남북예멘의 경우를 볼때 유엔 동시가입이 분단고착화라는 북한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어졌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유엔관측통들은 한나라가 정치적 견해가 판이한 두 대사를 대표로 내세우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제의하고 보고 있다. 「최고위급당국 및 정당수뇌협상회의」에 대해선 언급이 없고 정당ㆍ사회단체 등이 참가하는 회의를 제안한 것은 한국의 정세를 감안,일단 한국당국과의 접촉은 배제하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통일운동이 전민족적 차원에서 고양되고 있다고 보고 소위 「전민족적 통일전선」을 구축해 나가겠다는 시사로 보인다.
김일성은 이번 연설에서 특히 미국과 일본의 「분열주의 책동」에 대해 격렬히 비판,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이 최근 미일에 대해 가시적인 접촉을 강화하면서도 이같이 비난하고 나선 것은 「관계는 강화해 나가되 이것이 교차승인으로 연결되는 것은 막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즉 대미평화협정ㆍ주한미군철수 등 기본목표를 달성하고 경제개발 등을 위해선 미일과 접촉해 나가되 「일정한 거리」는 두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분야의 연설은 신년사와 같은 맥락이었으며 수출품 품질향상을 통한 기술혁신운동 전개,기업관리개선에 특히 역점을 둔 것이 눈에 띈다.
이번 김일성의 시정연설로 보아 북한은 동구의 변혁에도 불구,사회주의체제와 주체 및 자주노선을 고수하되 ▲한국당국과의 대화는 유보하고 통일전선을 구축하며 ▲대미ㆍ대일 접근책을 강화하고 ▲제한적인 경제개방조치를 취해 나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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