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가 인상의 조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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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아파트분양가 인상조치는 그것이 가져올지도 모를 전체 아파트값 상승,전·월세인상,물가상승,부동산투기자극등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주택문제의 핵심이 공급물량의 부족에 있고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건설업자들이 열심히 집을 짓도록 해야하는데 건자재값이 크게 오르고 인건비가 급등하는 여건에서 분양가만을 묶어 놓는다는 것은 업자들에게 집을 짓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번 조치를 업계의 압력에 굴복한 처사로 보는 견해도 없지 않으나 인상요인이 있는데도 값을 무리하게 눌러놓는 것은 공급부족에 따른 가격앙등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부실공사로 수요자들을 골탕먹이는 결과를 가져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차례 경험한 바 있다. 또 분양가와 실거래가격의 격차만을 높이고 그 결과 이익배분에서 건설업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부당하게 입주자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배분구조를 왜곡시킨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인상요인은 최소한 분양가격에 반영시켜주되 공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여 수요자들이 부당한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도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조치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 아파트 분양가 인상의 요인이 되고 있는 건자재 가격상승은 정부의 졸속행정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그 궁극적 책임의 일단은 정부에도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주택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공급물량을 대폭 확대키로 한 것은 지극히 필요하고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같은 계획에는 당연히 건설공사에 필요한 건자재 수급계획이 따랐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당이다 일산이다하여 신도시 건설 계획에 급급한 나머지 소요 원자재를 예측하고 모자라는 물량은 수입하는 등의 사전 대비책을 강구치 못함으로써 오늘의 건자재 파동을 유발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번 조치에서 또 한가지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택지의 선수금과 중도금에 대해 인도시기까지의 기간손실을 인정,연리 11.5%의 이자해당금액을 분양가에 가산토록 했다는 점이다.
토지분양시의 선수금에 대한 이자수익의 실질적 수혜자는 토지개발공사등 정부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이부분은 정부투자기관의 이익확보를 위해 분양가를 인상하는 결과 밖에 안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이 업자에게 업혀다니는 주택건설행정을 지속할 것이냐는 점이다.
정부는 대형아파트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업자의 사정을 들어 그 불가피성을 변명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집없는 서민들에게 내집을 마련해 주는 작업이다. 이 일을 민간업자에게 맡겨서 해결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 정부공급비중을 늘리는 등 과감한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 안심하고 살 곳을 마련해 준다는 데 정책목표를 두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는 의지와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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