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CIA 변신 경제첩보 "선전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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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서냉전이 완화되고 각국간에 이념을 떠난 경제경쟁이 더욱 가열화 되는 가운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최근 경제정보 수집활동을 강화, 일본·EC등 경쟁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CIA의 이 같은 성격변화는 소련의 비밀경찰 KGB가 해외첩보망을 활용, 서방경제에 대한 정보를 소련기업에 제공할 것이라는 선언과 함께 미-소 양국의 경제첩보 전 대결 양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짙게 하고 있다.
크류츠코프 KGB의장은 KGB가 경제분야의 특별분석이라는 중요한 임무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소련기업들이 해외시장진출을 위해「적절한 경험」을 입수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CIA의 윌리엄 웹스터 국장은 지난달 30일 미 보스턴에서 열린「세계문제평의회」에서CIA가 지난해 여름 기획조정실을 신설하고 국제경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조직을 구성했다고 처음으로 밝혔었다.
웹스터 국장은『일본·유럽국가들과의 경제적 경쟁이 더욱 격화되는 등 국제질서가 변화하고 있어 세계정보전략을 조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뒷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미국의 고위정책담당자들이 경쟁상대국들의 ▲경제전략 ▲시장목표 ▲연구·개발·생산 ▲보호주의적 조치 ▲무역장벽 등에 관한 정보를 CIA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혀 이미 활동중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웹스터 국장은『향후 10년간 경제경쟁력 향상문제를 집중조사 할 것』이라고 천명, 더욱 강화할 의사를 밝혔다.
이와 같은 웹스터 국장의 말은 일·EC등 미국의 경쟁국가들을 경악시켰는데『경제정보전의 선전포고』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각국의 정보소식통들은 CIA의 변화에 대해『동서화해 분위기 속에 중요성이 줄어든 CIA가 존재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정책』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웹스터 국장의 선언에 가장 충격을 받은 나라는 미국과 심각한 무역마찰을 빚고 있는 일본이다.
미국으로부터『보호주의 무역 관행을 쓰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온 일본은 CIA가「보호주의적 조치·무역장벽」에 관한 정보수집에 중점을 둔데 대해『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일본통산성의 폐지』라는 엄살 섞인 소리까지 하고 있다.
일본이 이같이 우려하는 것은 국내의 기업기술 보호체제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주일 미대사관·일본 진출기업 등을 통해 정보수집을 해 왔으나 이와 더불어 CIA는 동경의 미 대사관내에 동경지국을 설치, 50여명의 요원을 배치시켜 활동중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이 수많은 일본인·미국인·제3국 인을 매수, 정보제공자로 고용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이미 몇 차례의 대형정보누출사건이 터진바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지난 84년10월의 초고속철도(HSST)청사진 누출사건이다.
파산한 일본의 한 투자회사 사장이 사기혐의로 조사 받는 과정에서 일본항공(JAL)이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HSST의 청사진을 하와이내 CIA협력회사인 한 미 투자회사에 5만5천 달러를 받고 팔아 넘겼다고 진술, 일본 정·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87년10월엔 미국에 진출중인 일기업과 본사간의 전화통화가 미 국가안전위원회(NSA)에 의해 도청 당하고 있음이 폭로되기도 했다.
일본이 CIA의「선전포고」에 더욱 우려하는 것은 자국산업기술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산업스파이처벌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외교·국방정보누출은 국가공무원 법·자위대 법에 근거, 처벌하지만 기업의 사업계획·개발중인 기술의 비밀입수는 처벌하지 못하며 단지 복사문서의 절도만이 처벌될 뿐이다.
따라서 CIA공작원이 신분을 숨긴 채 일본기업·공공기관의 비서·영어선생으로 취직한 뒤 정보수집활동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일경시청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소련 KGB도 최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글라스노스트정책에 따라 자체활동 일부를 외부에 공개한데 이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에 의해 성격변화를 추진해 왔다.
KGB는 특히 소 국내경제긴축정책에 따라 예산감축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 국제적 해빙분위기에 따라 임무의 일부를 경제정보수집 강화로 돌리고 있다.
KGB의 주요 정보수집대상은 서구 외에 일본이 역시 주요국가로 등장하고 있다.
일본에는 현재 소련인 장기체류자가 3백여 명, 일시 방문자가 1만8천여 명(89년 기준)이나 되어 KGB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편이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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