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말한 '고해성사'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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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 21일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대선자금의 고해성사를 정치권에 제안했다. "대선자금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이상 여야 모두 투명하게 밝히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盧대통령은 "낡은 정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한 단계 높은 정치문화를 만들자"고 했다.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 사건은 그것이 결국 대선자금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당시 盧대통령 주장이 설득력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崔의원 사건은 결국 盧대통령이 의도하는 정치개혁의 밑거름이 될 것"이란 관측이 한나라당에서조차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당분간 정국의 주도권은 盧대통령과 통합신당 측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나라당은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비리를 비롯한 盧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규명하는 것과 崔의원 사건은 별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만큼 盧대통령에 대한 공세는 파괴력이 크게 떨어진다. 남경필 의원은 "우리에게 엄청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盧대통령 측근들을 겨냥해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수사를 한다는 말을 입에 담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야당 탄압' 운운해 봐야 국민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통합신당의 신기남 의원은 "한나라당은 이제 대통령을 공격하는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당은 앞으로 어떤 정치세력이 바른지 국민에게 알리는 일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전략 마련에 부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회를 활용해 정치개혁을 주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낡은 정치 대 새 정치' 구도를 형성하는 등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가 정치개혁 드라이브를 걸 경우 선거구제 개편 문제에 있어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개혁의 불을 지피면서 낡은 정치의 근원은 지역주의에 뿌리박은 정당구조.선거제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선거구제 개편 또는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 주장이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실한 지역기반이 없는 통합신당엔 선거제도 개편이 가장 유리하다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자민련이 신당에 유리한 선거구제를 채택할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과거 정치자금 관행을 그대로 끌고가긴 어렵다"고 말하고 있어 선거자금과 일부 제도의 개혁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이상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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