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니 짜 애들 도시락 쌌죠”/장한 어버이 임말녀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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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7형제중 박사만 4명/낮에는 김매기,밤엔 나무하기/40년 홀몸 던져 못배운 한씻어
『주위사람들이 모다 대핵교선상님 모친이라고 불러주먼 40년전 돌아가신 영감생각이 간절하지라우.』
8일 어버이날을 맞아 40년간 홀몸으로 일곱아들을 박사4명,국민학교 교감,우체국장,행정사무관등으로 키워내 장한 어버이로 국민포장을 받은 임말녀씨(78ㆍ광주시 광산구 장수동182).
낮에는 김매기,밤에는 나무하기등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을 억척스레하면서 7형제를 훌륭히 키운 임씨는 4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눈물을 훔친다.
13세때 고향마을인 전남 해남에 돌림병이 번져 부모를 여읜 임씨는 그해 옆마을 새댁의 초록저고리를 빌려입고 얼굴도 모르는 신랑에게 시집갔다.
10세위인 신랑 정지철씨와 가난했지만 단란한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함께 품일을 하며 어렵게 일곱아들을 키우던 임씨는 38세 되던해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과 함께 험난한 가시밭길이 시작됐다.
4년동안 위장병으로 누워 앓던 남편이 막내아들의 돌도 보지 못한채 오막살이 초가 한채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것.
『과부 혼자 일곱 아들을 키울것을 생각한께 징합디다. 이 에미랑 품팔이를 하던 큰아들 임종이도 그해 가실 나라에서 불러뿌러(군입대) 하늘이 원망스럽습디다.』
이때부터 임씨는 오로지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공부시켜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세상을 살았다.
『혼자 멀건 보리죽으로 끼니를 대우고 7개의 보리밥 도시락을 싸기위해 호롱불 밑에서 밤새도록 가마니를 짰습니다.』
그러다가 피곤에 눌려 깜박 잠이 들었다가 놀라 깨보면 방바닥이 코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자식들이 눈치챌까봐 우물물을 길어 닦아내고는 몰래 일을 나가기가 일쑤였어요.』
온몸이 쑤셔 일하기 어려울때마다 못배운 한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남편을 생각하면서 아들들만큼은 「배운사람」으로 키우고자 이를 악물었다.
『자식들도 고생이야 오죽 했겠습니까. 중ㆍ고교까지 고무신을 신고 30리길을 걸어다녔어요. 다행히 모두 똑똑해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까지 마쳤지요.』
임씨는 어렵던 시절이 눈에 선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애들이 씌워준 학사ㆍ석사ㆍ박사모자가 10개가 넘습니다. 저세상에 가서 영감을 다시 만나면 자랑할만하지요.』
임씨의 일곱 아들중 박사인 3남 정석종씨는 전남대 자연과학대학장,4남 선종씨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위성통신기술본부장,6남 성종씨는 전북대 교수(전산학),7남 희종씨는 전남대교수(미생물학)로 재직하고 있으며 장남 임종씨는 전남 영암 남국교교감,2남 기종씨는 광주계림우체국장,5남 오종씨는 정부기관 공무원으로 저마다 큰몫을 하고 있다.
임씨의 아들들은 『어머니가 큰상을 받고 큰 형님이 회갑을 맞아 경사가 겹쳤다』며 동네잔치를 벌여 어머니의 은공을 기릴 생각이라고 말했다.<박수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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