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양극을 넘어(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인도 가비라성의 왕자 싯달타는 어느날 외유를 떠났다. 막 궁성의 동문을 나서는데 백발의 허리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싯달타는 이때 처음으로 늙는다는 것이 뭔지를 알았다.
발길을 돌려 남문으로 나갔다. 이번엔 성문밖에 창백한 얼굴의 병자가 누워 있었다. 왕자는 사람이 병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며칠후 싯달타는 다시 서문으로 나갔다. 마침 상여가 지나가고 있었다. 왕자는 저게 뭐냐고 세번을 연거푸 물었다. 비로소 그는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 며칠후 왕자는 북문으로 나가는데 삭발한 비구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수행원은 그들이 인내심으로 일체 중생을 연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왕자는 깊이 깨달은 바 있었다. 29세의 나이에 그는 왕궁을 빠져나와 고행의 길을 떠났다.
황의에 삭발한 싯달타는 먹지도,입지도 못하는 고행을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메말라 해골의 몰골이 되고 몸은 나뭇가지처럼 비틀려 있었다. 그런 고행이 6년이나 계속되었다. 하지만 얻은 것은 인생의 수수께끼뿐이었다.
그는 그런 고행으로는 해탈에도,열반에도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깨끗이 씻고 이번엔 보리수아래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온갖 유혹이 다 있었지만 모두 뿌리쳤다. 49일째 되는날 새벽 그의 눈에 길이 보였다.
세상에는 두개의 극단,곧 쾌락과 고행의 길이 있다. 싯달타는 그 두개의 길을 초월한 곳에서 중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 길은 이것도,저것도 아닌 흐리멍텅하고 미지근한 것이 아니었다. 대립적인 두 극단을 모두 엄정하게 비판하고,자주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경우다. 중도를 걷는 것은 소극적인 회피가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 중도에 이르는 길은 여덟개가 있다. 올바른 견해(정견),올바른 결의(정사),올바른 말(정어),올바른 행위(정업),올바른 생활(정명),올바른 노력(정정진),올바른 사념(정념),올바른 명상(정정).
바로 이 팔정도는 불교 신자들만의 길일수 없다. 우리가 처한 오늘의 난국은 이런 노력없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불탄일의 귀한 교훈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