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정상화의 남은 과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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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파행방송을 계속하던 KBS가 공권력 동원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가까스로 피하고 뒤늦게나마 정상화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은 불행중 다행으로 생각한다. 끝까지 참을성있게 지속된 정부의 대화노력과 막판에 보여준 비상대책위측의 방송정상화 결단을 다함께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우리는 KBS사원들이 신임사장의 퇴진을 목표로 제작을 거부하고 정상적인 방송송출을 포기하는 행위에 대해 처음부터 반대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사장퇴임과 방송은 별개의 문제이며,어떤 이유로도 국민의 재산이며 공영방송인 KBS의 전파가 훼손 또는 왜곡되는 사태는 용납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해 왔다. KBS사원들이 벌여 온 그동안의 「민주언론」을 지향하는 애정과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 방법에 대해서는 우리가 의견을 달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방송을 정상화시키기로 한 마당에서 KBS는 우선 국민에게 지금까지 20일간에 가까운 제작거부와 파행방송을 해온 데 대해 깊이 사과해야 한다. 텔리비전과 라디오를 합해 무려 7개의 채널을 마비시키고 전파를 낭비한 것은 국민이 부여한 수임사항에 대한 배임이며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이에대한 자체적인 반성과 공개적인 사과가 있어야 할 줄 안다. 그리고 다시는 회사 내부적인 일에 국민을 볼모로 끌어들임으로써 국민을 불안하고 불쾌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
이번 사태로 해서 KBS가 대내외적 상처는 크리라고 생각된다. 우선 국민으로부터 받는 불신과 외면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배전의 성심과 노력으로 신속히 정상을 찾아 좋은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일이 급선무다.
또한 그동안 빚어졌던 사원과 경영자,사원 상하간,상호간의 갈등과 대립감정을 하루속히 치유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적대와 갈등의 감정적 앙금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는 프로그램 제작이나 방송이 정상궤도를 되찾기 어렵다. 「투쟁」에 앞섰던 사람들이나 이를 말리던 사람들은 서로가 상대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자세로 이해와 아량을 발휘하여 방송정상화라는 공동의 책무에 전념해 주기 바란다.
이 시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대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제력을 발휘한 정부 처사는 잘한 일이나 앞으로 KBS의 실제적인 정상화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KBS사원들은 사장퇴진 요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정부의 「언론장악음모」에 대한 그들의 의혹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내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는 한 사태가 끝났다고는 할 수 없다. KBS사원들의 방송정상화 결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처리해야 할 불을 정부쪽으로 던져 놓은 형세로 만든 것이다. 정부는 언론장악이라는 불신과 의혹을 없애는 일,서기원사장은 자신이 그러한 「음모」의 하수인이라는 노조측 주장이 결코 사실이 아니란 점을 입증하고 설득하는 일은 전적으로 정부와 서사장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KBS사태는 당장 급한 불을 껐을 뿐이고 정상화는 정작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인식을 갖고 앞으로의 마무리 작업에 임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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