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따라 말다른 「밀약설」/“청와대 합의각서” 진원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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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권문제 얽혀 파동의 불씨로/“YS격상” 민주계포석 추측도
청와대 밀약설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당권의 향방이 걸린 창당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도체제문제를 싸고 민정ㆍ공화계와 민주계가 김영삼최고위원이 맡도록 양해돼 있는 대표최고위원의 위상을 놓고 「협의제」냐 「합의제」냐로 입씨름을 벌이더니 민주계쪽에서 「92년 총선후 김영삼총재」로 합의한 청와대 각서설을 흘려 다시 파문을 던지고 있다. 청와대 합의각서가 과연 「대권밀약」인지,아니면 지도체제에 관한 합의인지 계파마다 다르게 주장하고 있는 그 내막에는 당권문제가 미묘하게 얽혀있기 때문인데 자칫하면 박철언 발언파동후의 제2파동이 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근 각서설을 처음 공개(?)한 것은 민주계의 김동영총무.
그는 지난 21일 김종필최고위원이 민자당의 지도체제문제를 놓고 대표최고위원은 다른 최고위원과 「합의」하에 당무를 총괄한다고 했던 김종필최고위원의 발언이 귀에 거슬렸던지 23일 『대표최고위원은 다른 최고위원과 「협의」할 뿐』이라고 의도적인 반론을 폈다.
그러면서 김총무는 『청와대회담때 세분이 이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규정한 합의각서를 만들어 1통씩 보관하고 있다』고 청와대밀약을 공개했다.
민주계는 나중에 이 각서에 92년 총선이후 김영삼최고위원이 총재가 되고 「대권후보」가 되도록 하는 밀약도 포함돼 있다고 흘렸다.
통합작업에 깊숙히 관여했던 한 민주계인사는 『김영삼최고위원의 성격으로 볼 때 92년 총선이후에 대한 명백한 약속을 받아내지 않았을리 없다』며 합의설을 은근히 뒷받침.
그러나 민주계도 이 사실을 명백하게 공언하지는 못하고 김영삼최고위원자신도 『모르는 일』이라고 언급을 회피.
그러나 김최고위원이 소련방문때는 자신을 「대통령후보내정자」라고 소개했던 사실이 있었던 점을 들어 최소한 김최고위원이 그런 인식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 중론.
○…합당당시엔 합당조건과 그 이후 통합당 운영에 관한 각서가 실무자선에서 만들어졌었다. 민정당의 박철언ㆍ박준병의원과 민주당 황병태,공화당 김용환의원 사이에 각각 따로 만들어진 각서에는 △당운영체제 △내각책임제 개헌△선거구문제 등이 포함됐었다.
이때도 당운영체제는 대충 노태우총재하에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 최고위원등 집단지도체제로 하되 사실상 김영삼대표가 당무를 총괄한다는 양해가 이뤄졌었다. 실무자들 사이엔 내각책임제 개헌후 첫번째 수상은 김영삼씨가 맡는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었다.
대통령제를 고수해온 민주계가 내각제로 선회하고 대신 김영삼씨가 먼저 정권을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헌부분에 대해선 김영삼씨가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1월22일 청와대회담때 이뤄진 각서엔 이 부분이 빠졌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청와대 합의각서엔 당지도체제ㆍ당운영방식등만 규정됐을 뿐이라는 것.
이 문서를 기초한 3당 실무자들의 말에 따르면 지도체제는 『총재가 세 최고위원과 「협의」하여 당을 「통할」하고 대표최고위원은 당무를 「총괄」하되 다른 최고위원들과 「합의」하여 행한다』고 명문화돼 있다는 것.
따라서 민정ㆍ공화계는 대표최고위원 중심의 사실상의 단일지도체제로 합의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대표위원의 권한범위를 싸고는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1노2김은 이처럼 당체제에 관한 합의각서를 만들고 난후 대화를 하며 『다음엔 김영삼총재가 정권을 맡으시죠』라는등 덕담이 오갔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이 말의 뉘앙스에 대한 3명의 해석이 서로 다른 것인데 노대통령이나 김종필씨는 「내각책임제 개헌」이후란 전제조건이 함축돼 있다는 것이고 김영삼씨는 『다음 대권은 내가 맡는 것』으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는 관측.
○…「김영삼총재­대권후보」 밀약설이 나오자 민정ㆍ공화계는 노골적으로 『당을 깨자는 소리냐』고 반발.
통합작업에 간여했던 박철언 전장관ㆍ박준병총장등은 『그런 문서가 있는 줄도 모르겠다』고 완강하게 부인했으나 내심 기분이 좋지 않은 기색들.
김윤환정무장관은 『구두로야 「당신이 다음에 하시오」라고 구상을 해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으나 『설사 그런 약속을 하더라도 정치상황은 언제나 가변적인데 그대로 되겠느냐』고 모호하게 넘기는 눈치.
김윤환정무장관은 상당히 불쾌한 표정으로 『어디서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따져야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김장관은 각서의 존재는 간접시인하며 『박철언 전장관에게 들으니 지도체제가 누가 봐도 단일성지도체제라는 걸 알 수 있게 돼 있다고 하더라』고 말하고 『그렇지만 차기대권문제를 문서화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일축.
3당통합과정의 민정계 주역이었던 박철언 전정무장관은 권력이양에 관한 합의각서설에 『나는 처음 듣는 얘기』『금시초문』이라며 부정적인 반응.
박 전장관은 『나는 코멘트할 입장에 있지 않다』면서도 『나도 모르는 일이 많더라』고 해 사실상 부인.
민주계가 이처럼 당지도체제문제ㆍ대권밀약설을 새삼 들고 나오는 것은 전당대회때 김영삼최고위원의 위상을 확실하게 못박아 놓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어 앞으로 절충과정이 문제인데 가뜩이나 「밀실야합」이란 비난이 나오는 판국이어서 설령 권력이양에 관한 밀약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누구도 내놓고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추측들.<김두우ㆍ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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