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5월 방미」 “유동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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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사적방문」이유로 수락 계속 미뤄/미소 정상회담 겹쳐 무산 가능성도
노태우대통령의 5월말 방미계획이 서울에서는 기정사실처럼 알려져 있으나 미국쪽에서는 부시 미대통령 일정의 유동성 때문에 아직도 미정 상태다.
방미계획이 서울에서 공개된 이후 워싱턴에선 외교채널을 통해 협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미측은 한국측 방미 희망의 수락여부 및 일정에 대한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방미계획의 무산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정부는 노대통령이 캐나다를 거쳐 멕시코를 방문한다는 의사를 미측에 제시해놓고 있다. 방문 형식은 서울쪽 표현으로는 「비공식방문」이고 ,워싱턴쪽 표현으로는 프라이비트 비지트(사적방문)로 추진되고 있다.
외국 지도자들의 워싱턴 방문이 잦은 미국은 이런 형식의 방문일 경우 외교관행상 일정등의 결정이 최종 막바지에 임박해서 이루어진다. 공식방문이라면 양국 정부의 의전문제등 준비관계로 일찌감치 정해져 공표되고,연초부터 한햇동안의 공식방문 건수등이 대충 계획된다.
그러나 프라이비트 비지트의 경우 미정부로서는 상대방 희망의 수락여부에 대해 의무감 또는 부담감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같은 요청을 적지 않게 받고 있는 미측으로서는 사양하는 데 있어서 주저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이번 한국측 희망에 대해 미국 정부가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노대통령 방미계획에 대한 검토를 계속 진행시키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미측 사정중 근본적인 요인은 부시 외교일정이 다른 역대 대통령보다 바쁜 점이다. 13일 미 워싱턴 포스트지는 부시의 바쁜 외교일정과 특히 그의 「개인외교」 스타일 면모를 소개했다.
부시는 취임 1년동안 외국 지도자들과 1백35회 상면했다. 특히 그는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직접 관련 외국지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교환해 왔다.
통화 횟수가 그간에 1백 90건,이틀에 1건씩의 전화 외교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건 대통령시절 미국에 대해 시큰둥한 태도였던 미테랑프랑스대통령을 부시는 자신의 해변별장으로 초청,개인적 친면을 쌓고 인접 캐나다의 멀로니 총리의 경우는 툭하면 부시별장에 초대되는 정도다.
부시의 이같은 개인외교는 최근 유럽의 급전상황에 대응하는데 시의적절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는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서독의 콜총리를 네번이나 만났고,전화는 수시로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작용으로,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을 사칭한 사람과도 통화를 했는가 하면 천안문사태 후 중국 지도자들과 통화하려다가 좌절돼 미대통령의 위신실추를 겪기도 했다.
이같은 바쁜 외교일정 외에 노대통령 방미계획에 유동성을 더욱 크게 만드는 요인은 5월30일부터 6월3일까지로 확정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방미계획이다. 이번 미소정상회담 일정은 진작부터 정해진 게 아니라 지난주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다소 앞당겨 잡혀진 점이 노대통령 방미추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소 정상회담은 토의 안건도 많고 정치적 영향이 막중하기 때문에 부시로서는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준비 또한 방대한 것이다. 부시쪽에서 볼때 최우선 고려사항은 정상회담인 셈이며,이 때문에 미행정부는 한국쪽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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