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사랑하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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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람들에 실망한 일은 있어도 너에게 실망한 일은 없었다.』 파리 근교의 애완동물공동묘지에서 이런 묘비명을 본 일이 있었다.
7년 동안 「함께 살아온」 개를 땅에 묻으며 어느 부부가 적어 놓은 글이었다. 벌써 1세기전 마규리트 듀랑이라는 부인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이 묘지엔 개,고양이,말들이 묻혀 있었다.
미국 여성잡지에는 고양이 사진을 곁들인 광고가 자주 난다. 『당신의 고양이 식성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까다로운 고양이도 이 통조림엔 만족합니다.』 짐승들도 이쯤되면 모정이 그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애완동물들이 살고 있는 유럽에서 지난 정월 한국사람들이 개를 죽이는 장면이 40여분이나 TV에 방영된 일이 있었다. 서독 제3TV(WDR3)는 한국의 보신탕을 소개하며 개를 끌고 가는 광경에서부터 보신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샅샅이 다큐멘터리로 보여 주었다. 같은 보신탕도 몽둥이로 때려 잡은 개라야 더 맛이 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니 그쪽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을 어떻게 보았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앨런 M 벡이라는 교수는 지난 85년 전미과학자대회에서 『애완동물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흥미있는 사실은 어린이들에게 개나 새,금붕어,고양이를 보여 주기만해도 혈압이 내려가고,스트레스도 현저히 해소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권위있는 수의학자인 수곡섭교수는 개,고양이,토끼 등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성격이 명랑하고 유순하며,협동정신이 강하고,모든 일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한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 고사엔 벼슬한 개 얘기가 있다. 고려말 개성에는 부모잃은 눈먼 아이가 있었는데 그 집의 개가 꼬리를 내밀어 그 아이의 손을 붙잡고 길잡이를 해주었다. 조정은 그 얘기를 듣고 개에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
우리나라 치안본부는 경범죄법을 고쳐 앞으로는 애완동물을 구박하거나 죽이는 사람은 처벌을 받게 할 것이라고 한다. 잘한 일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짐승의 격도 높아지지만 혹시라도 사람을 개패듯 하기는 어려울 것 아닌가. 그런 사람을 보면 개나 고양이가 웃을테니 말이다.
철학자 K 힐티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동식물에 대해서도 친절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도 역시 사랑을 배우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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