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올? 월드컵서도 골 넣고 … 레딩의 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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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레딩 FC 돌풍의 주역, 설기현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네요. 영국 BBC가 선정한 주간 베스트 11에 오른쪽 미드필더로 당당히 이름도 올렸고요.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벨기에로 건너간 뒤 느리지만 차근차근 세계 축구의 최고 무대까지 올라온 설기현, 오랜 시련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더욱 빛나는 것 같습니다.

데뷔골을 터뜨린 팀이 지난 시즌 챔피언십(2부리그)에 있었던 셰필드 유나이티드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네요. 제가 지난해 영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설기현(당시 울버햄프턴) 선수를 취재하러 셰필드 홈구장인 브래몰 레인 경기장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설 선수는 그날 선발 출장해 풀타임을 뛰었지만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았어요. 설상가상으로 그 게임 이후 글렌 호들 감독은 설기현에게 선발 기회를 주지 않았지요. 경기 후 설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박지성.이영표 선수에 대해 얘기하면서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된다. 대표팀 동료가 좋은 활약을 해 기분 좋고, 나도 다음 시즌에는 이들과 프리미어리그에서 함께 뛰고 싶다"고 했어요. 웃으면서 얘기는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 같아요. 잉글랜드에는 먼저 진출했지만 동료가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곳 축구팬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설기현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아닌가 할 정도예요. 설기현이 골 넣는 장면, 환호하는 모습이 스포츠 전문채널인 스카이 스포츠에서 수도 없이 반복해 나오더군요. 레딩이라는 팀이 프리미어리그 신입생이라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백과사전입니다. '세올'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울브스에서 뛰었던 스트라이커?" "2002 월드컵 때도 골 넣고, 체격도 유럽 선수들에게 안 밀리고, 정말 미래가 밝아요"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죠.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첼시 서포터 존 테일러는 "지난 시즌 프레스턴과 울버햄프턴의 경기를 직접 봤다. 그날 전체 선수 중 '세올'이 기술과 체력, 특히 공간을 찾아다니는 움직임에서 최고였다. 그가 곧 프리미어리그의 러브콜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했어요.

애스턴 빌라 서포터라고 밝힌 은행원 말콤 파킨은 "요즘 그의 볼 터치, 크로스를 보면 챔피언십에 있을 때보다 한 단계 성숙한 것을 확연히 볼 수 있다. 특히 어제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반 박자 빠르게 슈팅, 성공한 골은 환상적이었다. 그는 레딩의 간판 스타"라고 했어요.

꿈의 무대에 선 설기현 선수, 올 시즌 부상 없이 꾸준한 플레이로 레딩의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영국 러프버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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