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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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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하이에크는 자유주의 예찬론자로서 70년대말에 한국을 한차례 다녀간 일도 있어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경제학자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석학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케인스가 제시한 거시경제학은 학문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던 일은 지금까지도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오스트리아 명문가 출신인 90노구의 하이에크는 그간의 독일·영국·미국에서의 학문적 편력을 끝내고 지금은 자유주의적 질서학파의 본산인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는 한마디로 자유주의의 수호와 그 결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초지일관의 경제사상가이며 또 탁월한 이론가다.
그의 자유주의 질서에의 열정은 1947년에 자유주의 신봉자들로 구성되는 스위스의 「몽페를랑 협회(Mon Perlin Society)」 창설로 결실되고 있으며, 특히 케인스주의에 대항하는 오랫동안의 외로운 싸움끝에 1974년에는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는 하이에크의 저작중 그의 사상을 대표할만한 8편의 글을 골라 옮긴 것으로 대부분 연설 또는 단편논문들로 구성돼있다. 이들 논문들이 시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줄거리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같다.
첫째, 기성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소위 「구성주의」란 종래의 방법은 사회현상을 오로지 인과론적·기계론적으로만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오류라고 못박는다.
사람들의 습속과 생각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배태·형성되는 문화나 제도에 처음부터 어떤 의도가 개입됐다고는 할수 없는 것으로 인위적인 힘이 배제된 상장에서 저절로,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일종의 진화론적 입장을 취하고있다.
따라서 항상 작은 변화속에서 진전되는, 그리고 항상 움직이는 시장질서를 판에 박은 어떤 잣대를 가지고 도식적으로 설명하려는 현대경제이론의 접근방법은 잘못된 것이며 나아가 장래에 대한 예측까지도 가능하다는 그들의 태도를 「지식의 오만」으로 혹평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시장질서는 그러한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자발적 제도인데 그 장점인 「효율」을 미처 체험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그것의 불공평성을 들어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국가계획』이니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니 하는 말로 깎아내리는 태도를 비판한다.
그는 시장질서하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중앙집권적인 체제에서보다 더 많이 분배받을 수 있다는 「불평등의 이점」을 지적한다. 그는 또한 저절로, 스스로의 힘으로 형성된 시장질서는 그 사회구성원들이 수용하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와 양심과 전통적인 도덕성을 배경으로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그러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법적규칙에 의해 제재되는 질서화된 자유만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임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자유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자유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미끼에 의해 정치적·행정적으로 크게 훼손당하고 있음을 그는 고발한다. 또한 민주주의는 다수의 횡포성을 지니고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하여 그는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할때만 유일하게 강제성을 발휘할수 있어야하며 그밖의 어떤 형태의 억압적 강제성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그의 자유주의 사상이 민주화와 자유시장경제 질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이시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바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자유를 지금까지 체험하지못한 우리에게 정말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한편 사회주의는 과연 정의와 공정을 보장하는가.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있는 사상적 갈등을 명쾌하게 해소시켜줄수 있는 진솔한 교양서로서 학생·정치가·관료및 사회과학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필우 <건국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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