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뉴욕 고칠 곳 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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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뉴욕시가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도시내부가 썩어가고 있어 뉴욕(새욕)대신 올드욕(낡은 욕)이 되고 있다. 화려한 위용을 떠받치고 있는 도로, 다리, 지하철, 상·하수도 등 하부구조가 엉망이 되어 도시기능 자체가 점차 위축되고 있는데도 보수자금 부족으로 대도시의 모습이 흉칙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저녁 맨해턴을 들락거리는 출·퇴근 자들은 오늘은 어느 곳에 도로나 교량보수공사가 있어 통행이 금지되는지 미리 알기 위해 라디오뉴스를 듣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도로 곳곳의 노면이 고르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맨해턴을 사방에서 이어주는 다리들은 교각 철근이 부식됐거나 녹이 슬어 과연 이 다리를 건너도 안전할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런가하면 낡은 상·하수도관이 터져 물기둥을 이루는 바람에 교통이 한나절씩 막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물 때문에 지하철이 침수되어 지하철운행이 중단되는 소동을 빚기도 한다.
지하철역 안에 물이 새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통신체제가 낡아 지하철운행도 혼선을 빚기 일쑤다.
뉴욕시 자료에 따르면 시 고속도로와 일반 도로의 50%가 재 포장되어야 할 형편에 있고 8백46개의 다리가운데 40%인 3백49개가 상태가 좋지 않다. 이미 다리 14개가 전면 혹은 부분적으로 폐쇄되었다.
또한 6천 마일에 이르는 상수도 관이 낡아 매년 2백 마일씩을 교체해야할 형편이고 14개의 하수처리장은 용량이 적어 물 사용이 증가되는 여름이나 비가 많이 내리게 되면 제 기능을 못해 처리되지 못한 하수가 맨해턴 양쪽을 흐르는 허드슨강과 이스트강으로 그대로 흘러가게 된다.
이같이 뉴욕시의 하부구조가 엉망이 된 것은 이들 시설을 80∼90년 전에 건설한 후 제대로 보수작업을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최신공법과 기술 및 자재로 건설된 이들 하부구조들은 60년대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70년 들어 자연부식과 사용증대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때마침 예산적자에 허덕이던 뉴욕시는 이들을 보수할 새로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임시 땜질로 방치해둘 수밖에 없었다.
10여 년 전 카치시장이 들어설 때 다리의 절반이상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서 채권발행이란 비상수단을 동원해 하부구조 개선작업에 나섰었다.
10여 년간 1백90억 달러를 들여 다리 1백40개를 보수하고 상수도 관 6백40마일을 다시 묻고 하수처리장 두 곳을 새로 건설했다.
딩킨스 신임뉴욕시장은 도로 및 교량보수 전담회사를 설립하는 등 뉴욕의 추한 모습을 씻어내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으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문제는 이 하부구조를 개선할 돈이다. 뉴욕시는 만성적 예산적자 때문에 채권발행으로 겨우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뉴욕주와 연방정부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주도 누적된 적자로 며칠 전 신용평가가 떨어져 높은 이자를 주지 않으면 사채권발행이 어려워 이자부담이 늘게돼 더 큰 재정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이고 연방정부도 마찬가지로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터에 민주당 지배의 뉴욕시에 재정지원을 늘릴 의사가 없다.
뉴욕시의 하부구조를 현 상태로 유지하는 보수에만도 1백80억 달러가 10년간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뉴욕의 모습을 일신하기 위해선 이보다 몇 배의 돈이 더 필요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요한 세입원인 대기업들이 범죄와 높은 세금 등을 이유로 뉴욕을 떠날 채비 등을 하고 있어 뉴욕시는 더욱 곤경에 처해 있는 셈이다.
【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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