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포항 건설노조 파업, 그 이후 70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포항건설노조의 파업이 70일 동안이나 계속되면서 노조 집행부와 일반 노조원 간 '노노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일부 노조원들은 공사 현장에 복귀하거나 민주노총 산하 현 노조에서 탈퇴, 한국노총 가입을 추진하는 등 이탈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또 집행부에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 합의안을 받아들이고 파업을 끝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집행부는 그러나 ▶구속자 석방(62명) ▶포스코의 손해배상소송 철회(16억3000만원)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12일 마련한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미루고 있다.

◆ 노조원 현장 속속 복귀=포스코건설에 따르면 11일 현재 공사현장에 복귀한 노조원은 490명에 이른다. 지난 1일 120여 명에 이어 4일 270명, 5일 320명, 6일 244명, 7일 410명, 8일 400명 등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포스코 내 24개 공장.설비현장에서 공구정리 등 기초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일부 현장은 복귀자가 많아 사실상 공사가 재개됐다"고 말했다.

이들을 고용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들은 "파업으로 임금을 받지 못한 노조원들이 자녀 학원비 마련 등 생계 곤란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 복귀 노조원 중 20여 명은 9일 현 노조와 민주노총을 탈퇴, 한국노총 가입을 결정했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황모(50.용접분회)씨는 "현 집행부가 일하고 싶어하는 노조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어 탈퇴를 결정했다"며 "집행부를 위한 노조가 돼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차모(45)씨는 "노조 탈퇴를 원하는 조합원이 300여 명에 이른다"며 "탈퇴서를 모아서 조만간 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집행부 왜 버티나=노조 집행부가 잠정합의안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치는 것은 포스코 본사 점거 등 강경투쟁을 해왔으나 단체협약.임금에서 얻은 게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노조는 협상과정에서 토요일 유급휴무를 요구했으나 잠정합의안에는 무급 휴무로 돼 있다. 기존 협약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또 기존협약안에는 '노조원 우선 채용규정'이 있었으나 잠정합의안에는 일반기업처럼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로 바뀌었다. 노조원을 강력하게 결집.통제하던 수단이 됐던 우선 채용 규정이 사용자 측 반발에 밀려 '채용 때 조합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고 채용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뜻으로 후퇴한 것이다. 임금도 노조는 15% 인상(다시 12% 수정)을 요구했으나 5.2% 수준인 하루 5000원 인상으로 잠정 결정됐다.

포항시 관계자는 "노조가 시민 등 내.외부의 비난여론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어 조만간 잠정합의안에 대해 찬반투표를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 지역경제에 큰 타격=포스코는 파업 기간 중 노조의 본사건물 점거로 16억3000만원의 직접 피해 말고도 포스코 내 24개 공장.설비현장 공사가 중단돼 11일 현재 3100억원의 '기회비용 손실'이 생긴 것으로 추산했다. 하청공사를 해온 100여 개 전기.기계 등 전문건설업체도 일거리가 없어 타격을 받았으며 식당.숙박업소 등 지역경제에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포항=황선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