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8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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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 남노당 지하총재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스티코프」연설로 정계충격/미군정청,경찰제도를 군대식으로 개편
미소공동위원회 개회식 인사에서 스티코프의「삼상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분자는 앞으로 수립될 민주주의 임시정부에 참가시키지 않는다」는말은 서울 정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우익은 신경을 곤두세웠고 공산당에서는 환성을 질렀다.
내가 속해있는 공산당의 해방일보는 이에대해『소련대표 스티코프의 연설은 그 내용에 있어서 양국공동위원회의 행동강령이라고 할만한 구체적 조건을 보여주었다. 전체의 정신은 진정한 조선 민주주의 진영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표명했다. 또한 이것을 토대로 하여 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을 원조한다는 것을 명백히 표명했다. …오늘 조선에는 반동적 반민주주의파의 민주주의 제도를 파괴하는 운동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반동분자들은 간장이 서늘해질 것이다. …우리당에서는 이번미소공동위원회를 도와 모스크바 삼상결정에 근거해 조선문제를 해결하기에 협력할 것이요,반동적 반민주주의분자의 책동을 물리치고 모든 민주주의자들과 보조를 같이해 나갈것을 굳게 맹세한다』고 썼다.
3월23일 미소공동위원회는 정부수립과 정당대표 참가등에 관한 두번째 성명을 발표하고 3월30일에는세번째 성명을 발표했다. 4월6일에는 『미소공위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정중한 전보와 서신을 많이 받았다.…
너무도 많아 일일이 회답치 못한다. … 조선의 영원한 복리를 가져오기 위해 우리의 임무를 수행…』이라는 내용의 네번째 성명이 발표됐다.
임시 민주정부를 수립하려고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고 있는 중인데미군정청에서는 경찰제도를 군대식으로 4월15일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지방경찰은 미국식으로 지방장관,즉 도지사밑에 있었는데 앞으로는 경무부장 직속으로 하고 군대식으로 사단구를 설치하며 경무부를 최고사령부로 하고 각도를 8구로 나누어 각도에 한개의 사단구를 두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경무부장 조병옥은『우리 경찰진용은 사회추천에 의한 민선기관이 아니고 그 직원을 군정장관이 임명한 경무부장의 임명권에 의해 그 신분이 보장된다. 사회와 타협하고 구합할 권리도 없고 의무도 없는것이다. 군대와같은 명령계통을 가지고 규율적으로 복무를 다함으로써 의무를 다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앞으로 그명칭과 기구도 경무부와 일원적 연락아래 두고자 준비하고 있는터이다』고 담화를 발표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만 조병옥도 해방전에는 경찰을 가장 미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를 나와 미국으로 가서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뒤 신간회에도 참가하고 29년에는 광주학생사건 관련으로 감옥살이도 했으며 조선일보사에 들어갔다가 37년에 또 2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39년인가 40년쯤 나는 그를알게 되었다.
가회동에 사는 영남출신 부호 최재학이 나의 외사촌 자형이었다. 동경에서 서울에 돌아오면 그집에 꼭 들르곤했다. 그 집이 나의 외사촌누이 집일뿐아니라 최재학의 동생이 유명한 화가 최재덕이며 그는 나와 같은 동경유학생이기 때문이었다 (최재덕은 6.25때 북에 납치되었다).
최재학은 늘 마작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를 통해조병옥박사도 마작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일은 할수없고 취직할데는 없고 돈은 필요했기때문 이었을 것이다.군자가 궁하면 그럴수도 있다. 나는 그러한 조박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다. 나는 외사촌누이나 자형을 보면 하룻밤에 술값을 1백원이나 쓰는데 하루저녁 술값만 조박사를 도와주면 될것아니냐고하면 안그래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조박사의 집은 가회동에서 화동으로 넘어가는 갈림길 근처의 열칸짜리쯤 되는 한옥이었다.
그는 두번이나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겪었고 돈이없어 고생도 많이 한 사람이라 경무부장이 되면 돈없고 권력없는 사람에게 동정할줄 알았다. 우연히 돈암동 전차종점 근처를 지나다가 보니 커다란 집대문에「조병옥」이란 문패가 걸려있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미소공동위원회는 4월18일 삼상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민주제정당 사회단체와의협의조건에 관한 다섯번째공동성명을 발표하고 24일에는 각정당단체의 자문서 작성안에 관한 여섯번째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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