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장의 뺨(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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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람의 뺨은 마음의 창이다. 아름다움,천진함,정숙함이 모두 그 뺨에 그대로 비친다.
뺨의 색깔도 분위기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발그레하거나 새빨간 뺨은 부끄럽고 당혹스러울 때 나타내는 표정이다. 「홍조 띤 신부」의 얼굴이라는 표현도 부끄러움을 타는 정숙한 여성을 상상하고 하는 말이다. 때로는 시뻘겋게 달아있는 얼굴도 본다. 분노에 넘친 얼굴이다.
그러나 뺨에서 핏기가 사라진 시퍼런 얼굴도 있다. 어느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금방 달려들 듯한 공격형의 얼굴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하얗게 바랜 얼굴이 된다. 극도로 겁을 먹고 공포에 질려 있는 표정이다.
서양에는 「포커 페이스」라는 말도 있다. 말 그대로 포커를 할 때 얼굴표정을 봐서는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소련 외교관들이 제일 먼저 받는 직업훈련은 「얼굴표정 관리」라고 한다. 적절한 때 포커 페이스를 하고 있어야 협상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그러는 모양이다. 글쎄,그것이 훈련을 받는다고 될 일인지는 몰라도 소련다운 얘기다.
영어로 건방지다는 말을 「치키」라고 한다. 뺨을 의미하는 「치크」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뺨을 얼마나 잘 간수해야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속마음과는 달리 뻔뻔한 인상을 풍긴다면 좋을 것 하나 없다.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은 『사람은 얼굴을 붉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 인간이다』는 말을 했다. 얼굴은 바로 양심의 거울이라는 말로 들린다.
우리 속담에 『뺨을 맞아도 이왕이면 금가락지 낀 손에 맞으라』는 말이 있다. 이 경우 금반지는 부자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점잖은 사람으로부터 꾸중을 듣는 것은 참을 만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 어느 국영기업 사장이 주무관청의 관리로부터 뺨을 맞아 분분한 화제가 되었다. 때린 사람은 33세의 사무관이었고 맞은 사람은 60세의 육사 11기출신이었다.
새삼 시비곡직에 끼어들 흥미는 없다. 분위기로 어림짐작은 되지만 그런 것은 나중 문제다. 우선 나이 하나만 놓고 보아도 다른 사람의 동정을 사기 어럽다. 설마 국회라는 곳이 보잘 것 없어서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지야 않았겠지만,어떤 시비도 이성을 잃은 가운데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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