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 드나드는 중학생(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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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여관비 마련에 돈이 필요했어요.』
14세 본드범죄 소년의 범행 이유는 너무 엉뚱했다.
14일 낮 서울 동부경찰서 소년계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홍모군(서울K중 1년)의 답변.
서울 자양동 일대에서 귀갓길 국민학생들을 협박해 본드를 마시게하고 환각상태에서 소매치기까지 시켜오다 붙들린 것이다.
『본드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생겨났어요.』
지난달9일 김모군(15) 등 학교선배 2명과 함께 뚜렷한 이유 없이 가출해 본드환각에 빠져든 홍군은 부모의 화난 얼굴을 떠올리다 끝내 집을 포기한채 낮에는 오락실과 롤러스케이트장을,밤이면 장안동일대 싸구려 여관을 전전하면서 차츰 돈이 궁해졌다.
끝내 이들은 지난달22일 오후5시쯤 서울 자양동시장 뒷골목길에서 속셈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문모군(10ㆍ서울J국교 5) 등 국민학생 4명에게 여관비를 빼앗으려다 돈이 없자 본드를 강제로 마시게 한뒤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의 손지갑에서 1만8천원을 훔치게 했다.
『본드를 마시면 겁이 없어지고 손에서 레이저광선이 나오고 장풍이 일어난다고 했더니 마시더군요.』
홍군 등은 이밖에 가출후 한달여동안 여덟차례나 길가는 국교생들을 협박,20여만원을 빼앗아 여관비와 놀이비용에 충당했다.
그러나 여관주인은 한마디 물음없이 이들을 손님으로 깍듯이 모셨다.
『코흘리개들이 무리를 지어 여관을 드나드는데도 수입만 올리면 그만이라는 어른들의 무관심이 애들의 범죄를 부추긴 셈이지요.』
학교주변 폭력배 몰아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문군의 학교 이모교감(54)의 탄식이었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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