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골프] 김재규의 '유신의 심장' 발언에 일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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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골프 애호가인 JP는 즐겨 찾는 골프장이 정해져 있다. 뉴코리아, 서서울, 수원, 레이크사이드, 은화삼CC 같은 곳이다. 그가 선호하는 골프장의 기준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고, 마음 편하게 공을 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생애 최저타인 2언더파를 기록했던 서서울CC가 가장 애착이 가는 모양이다. “골프장은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어야지 스트레스가 생겨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1시간 이상 차 속에서 흔들리며 가게 되는 골프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 어떤 골프장에서 세계적인 명코스를 설계했던 사람이 만든 코스니까 시범 라운딩을 해보라는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쳐보니 별로였어요. 페어웨이나 그린 부근에 웬 벙커가 그리도 많은지. 벙커 많은 것이야 잘 살펴서 치면 되지만, 벙커를 사람 키보다 높게 파 놓았어요. 게다가 벙커 턱이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띠를 만들어 놓았더구먼. 공이 거기 맞으면 엉뚱한 곳으로 튀어 나가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고. 어떤 기업이 가평 가는 길에 만들어 놓은 골프장인데, 이름은 안 밝히기로 하지. 설계한 사람은 ‘호주의 백상어’라 불리는 그레그 노먼이야.

시범 라운딩 후에 오너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프로들이 좋아하는 코스가 명코스는 아닙니다. 80대 치는 사람들이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 칠 수 있는 곳이라야 명코스가 될 수 있지요. 이 골프장은 골프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나 치는 곳이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설계된 것 같지는 않아요’라고 한마디 해줬어요. 그 후 설계를 바꿨는지 몰라.”

JP는 하도 골프를 자주 치다 보니 골프장에 대한 식견이 전문가 수준 못지 않다. 그는 골프장을 설계할 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는 코스를 만들어야지 억지로 골퍼들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도록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골프장 오너가 골프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는 라운딩해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JP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와 매년 정기적으로 라운딩을 함께한다는 것은 앞서 밝힌 바 있는데 그 외 다른 일본 총리들과도 종종 골프를 즐겼다. 과거에는 JP뿐 아니라 김윤환, 박태준 같은 지일파 정치인들이 일본 정치인들과 골프를 하고,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함께하면서 한·일 간의 민감한 문제를 부드럽게 풀어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윤활유 정치’가 없어졌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나 외교가 꼭 딱딱한 공식석상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의 예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JP가 기억하는 일본 총리들의 골프에 얽힌 일화다.

“골프를 즐긴 역대 일본 총리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람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였어요. 추진력이 강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는데 록히드 사건에 연루되어 불행하게 정치 생명을 마감했지요. 그분은 정치하는 모습처럼 골프도 막 밀어붙이는 타입이었어요. 성격이 불 같았지. 동반자가 자꾸 공을 숲으로 보내고 미스 샷을 남발하면 가만히 지켜보다가 공 주워서 가라고 그래요. 그런 실력으로 골프채를 휘두르지 말고 더 연습하고 오라는 거야. 함께 칠 자격도 없는 사람이 끼어있으면 라운딩에 방해가 된다는 거지. 성격이 그랬어요.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다른 사람과는 안 치고 꼭 자기 아들하고만 쳤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남들에게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골프를 치다 보면 이런저런 약점이 보이게 마련이니까요. 기시 노부스케 총리도 골프를 좋아했어요. 기시 총리는 정계를 은퇴한 후 후지산 밑에 있는 고텐바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가 세상을 떴어요. 그 골프장 현관에 기시 전 총리가 쓴 글씨가 현관에 걸려있어요. ‘네라이스기루토 하이라나이(狙いすぎると 入らない)’라는 말인데, 우리 말로 번역하면 ‘너무 노리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퍼팅이든 세상 일이든 너무 소심하게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경구지요.

사실 골프는 그린 주변에서 승부가 결정됩니다. 페어웨이에서는 한번쯤 실수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퍼팅은 실수하면 그대로 스코어를 잃고 말지요. 나도 퍼팅은 주저 없이 하는 편입니다. 척 봐서 라이가 눈에 들어오면 과감하게 스트로크 하는 것이 좋아요. 요리보고 조리보고 한다고 해서 공이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JP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중요한 증언을 하나 했다. 박 대통령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간의 불화와 충성 경쟁 때문에 벌어진 발작적인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시해한 일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들을 가장 오랫동안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던 JP는 단호하게 나머지 설들을 일축했다.

“1979년 5월 초였습니다. 김재규가 청구동 집으로 왔어요. 그 전에 내 측근 한 사람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사과하러 왔나 보다 했지요. 그는 공사를 막론하고 날 돕던 사람인데 ‘JP를 대통령 시키려 한다’는 모함을 당하고 끌려가서 고생 꽤나 했지요. 그런데 김재규가 내게 사과하러 온 게 아니었어요. 와서 한다는 말이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분이지만 이제 중앙정보부의 기본 임무가 바뀌었습니다’ 이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중앙정보부 임무가 바뀔 이유가 어딨소.

중앙정보부 임무는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적절하게 사용토록 해서 국가 안보가 잘못되지 않게 뒷받침하는 것이지’라고 일러줬지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물론 그런 임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보다 앞서는 참된 기본 임무가 생겼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중앙정보부의 가장 중요한 기본 임무는 박정희 대통령을 종신 대통령으로 모시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되었습니다’라더구먼.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웃고 말았어요. ‘그래 그 말을 전하려고 여기까지 왔소’라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꼭 전해야 할 것 같아 왔습니다. 중앙정보부의 변경된 기본 임무에 저촉되는 그 누구도 엄중한 취체 대상이 될 것입니다’라는 거야. 내가 대놓고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무슨 이집트의 나세르라도 된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나한테 허튼 주의 기울이지 말고 딴 데 신경 쓰란 말이오’라고 쏘아주었지요. 아마도 마음속으로 나기브 대통령을 제쳐놓고 중령이었던 나세르가 그 자리를 찬탈한 일을 되뇌고 있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이러던 사람이 얼마 후 대통령을 시해했단 말입니다. 이건 일반 사람들이 몰라요. 여기서 처음 밝히는 말입니다.

김재규는 재판정에서 ‘나는 유신의 심장을 쐈다’며 마치 민주투사라도 되는 것처럼 뇌까렸지만 천만의 말씀. 그자는 발작증이 있는 친구야. 중장이란 자가 권총 하나 제대로 쏘질 못했어요. 차지철이 하고 충성 경쟁하다가 졌던 거지. 입버릇처럼 ‘차지철이 이놈 죽이겠다’고 말하다가 결국 술 자리에 함께 있던 박 대통령에게까지 총부리를 들이댄 거야. 주변 사람들이 김재규에게 ‘너 이왕 죽을 거 민주투사나 되어라’고 사주했던 것 같아요. 미 CIA 연루설도 다 허튼 소리야.”

[이코노미스트]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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