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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살리는 길/차하순(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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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월은 뭐니해도 교육의 달이라 할 수 있다. 각급 학교가 봄학기에 들어 일제히 개학했고 모든 대학 역시 입학식을 끝내고 신입생들을 맞아들였다.
그런데 대학이 과연 신입생들의 부푼 꿈을 어느 정도 실현시켜 줄지는 자못 의문이다. 그만큼 오늘날의 대학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며 특히 사립대학의 사정은 심각한 형편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립대학의 어려움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인식이 그다지 공감적인 것이 못된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책임의 대부분은 대학 자체에 있다. 해방이후 사립대학이 걸어온 과정에 비추어볼 때 우리 사회에서 사립대학을 높이 평가해야 할 이유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형편 어려운 사립대
그동안 일부 사립대학에는 비난받아야 마땅한 크고 작은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므로 사학관계자들은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국 1백22개 대학중 84개교가 사립이며 대학출신 4명가운데 3명이 사립대학 졸업자들로 이들이 사회 각계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몫을 맡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사립대학에 들어와 공부하고자 하는 수십만명에 달하는 고교졸업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엄연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사립대학이 지닌 공공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립대학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간단히 줄여서 그것은 교육재정과 학사운영의 두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대학재정이 거의 전적으로 학생납입금에 의존해 있고 연예산의 대부분이 심한 경우 80∼90%까지도 학교 경상비로 지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국들의 경우 예컨대 일본이나 미국은 사립대학 총수입중 학생납입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40%를 전후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국고보조와 그밖의 기부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학교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겠으나 대체로 기부금이 3∼7%이고 국고보조는 겨우 1%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정부지원의 필요성은 너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학교시설이 증축되며 설비가 확충될 수 있겠는가. 또한 교육환경 조건은 개선되며 교수진은 보강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글로 쓴다는 것 자체가 국민적 수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학사운영면에서 본다면 당국의 직ㆍ간접적인 제약과 통제로 인해 참다운 학교특성을 살리는 교육이 어려울 뿐 아니라 독자적인 교육신념이 십분 구현될 수 없음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대학은 교육외적 영역에 속한 문제들을 많이 떠맡고 있다. 그것들은 거의 전부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고 특히 1960년대이래의 정치적 현실에 그 유래가 있는 역사적 유산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순 교육적 접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성질의 것들이다.
○시범대학 지정하자
그렇다면 대학,특히 사립대학이 당면한 문제들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 한마디로 대학의 문제는 대학 스스로에 맡길 때가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해결방식은 단지 정부지원이나 일반사회의 도움에만 의존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학 스스로가 활로를 타개하는 자조자구적인 노력과 도덕성에 바탕을 둔 자기정화적인 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몇몇 사립대학을 시험삼아 시범학교(Pilot university)로 지정하라고 제언하고자 한다. 달리 말해 자원하는 소수 대학을 지목해서 학교 재정조달과 운영,그리고 학사관리에 있어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해본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자율성 보장에는 조건도 따라야 한다. 첫째,학교재정과 학사행정은 공개되어야 한다. 대학당국은 예ㆍ결산을 공표하고 공신기관에 정기적인 감사를 의뢰할 수 있다. 둘째,파생되는 결과에 대해 도덕적 내지 법적 책임은 물어야 한다. 자율이나 자유가 방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율과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대학을 시험적으로 지정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정기간 운영후 성공적이라 평가되면 점차 이 제도는 전국적으로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최근 몇년동안 정부당국이 공식ㆍ비공식적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논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학생회비 징수방법에서부터 총장임명승인에 이르기까지,학부와 대학원의 정원에서부터 학칙개정에 이르기까지,거의 모든 학사관리는 물론이고 학교시설 건폐율,학교부지의 용도등 대학재정 운영과 관계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규제는 상존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최근 정부가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계획을 위해 종전보다는 적극적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작년말부터 금년초까지 사학진흥기금으로 3백억원을 예산상 책정했고 이외에(아직은 영달되지 않았지만) 사립대학의 시설ㆍ설비 확충지원으로 1백60억원이 확보되었다.
○완전한 자율이뤄야
실로 이것은 우리나라 교육사상 최초의 사학에 대한 정부지원이며 사립고등교육기관의 공공성 및 그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창학이념과 독자적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사립대학의 자율성 제고는 결국 우리나라 사학의 교육적 공공성을 명백히 함과 동시에 나아가서는 교육재정의 자립을 보장할 뿐 아니라 학교행정의 공개를 통해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라 믿는다.<서강대부총장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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