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싸움에 밀려 정치개혁에 한계/일 가이후 2차내각 성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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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개파서 철저한 “갈라먹기”/대장상ㆍ외상 유임,대외정책은 안바뀔듯/소비세폐지 문제ㆍ대미관계등 난제 산적
일본 중앙의원총선에서의 자민당 대승에도 불구,제2차 가이후(해부) 내각 출범까지는 큰 진통을 겪었다.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리크루트ㆍ록히드 관련자를 내각에 넣을수 없다는 가이후 총리의 강력한 의지와 이를 무시한 파벌역학이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27일밤 조각과정에서 암초에 부닥친 것은 와타나베(도변ㆍ구 나카소네)파가 최우선적으로 입각대상자로 추천한 사토(좌등효행) 부간사장의 처우문제. 사토는 록히드 스캔들로 유죄가 확정된 전력이 있으나 9선인데다 당에 기여한 공도 크므로 꼭 입각시켜야 한다고 계속 고집한 와타나베파에 대해 가이후 총리측도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무시할 수 없다』고 반대,당초 오후 8시에 끝날 조각작업이 28일 오전1시까지 연기되는 이례적인 사태를 연출했다. 일본 내각구성은 통상적으로 총리지명 당일밤에 결정돼왔다.
가이후 총리가 사토의 입각 거부를 관철시킨 것은 자칫 록히드 관련자를 풀어줬다가는 다시 정치전면에 나서게된 리크루트 관련자를 모두 「복권」시켜야하는 부담을 안게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강하다.
당3역 인선과정에서도 아베(안배)파의 가토 무스키(가등육월)와 미야자와(궁택)파의 가토 고이치(가등굉일)등 리크루트관련자를 각파벌이 추천,결국 가토 무스키에게 정조회장 자리를 허락하고 만 가이후로서는 더이상 양보했다가는 자신의 리더십이 위협받는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사실 총선을 통해 재합격한 리크루트 관련 중진들의 입김의 강도는 이번 내각인선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뉴 리더그룹 파벌영수인 아베,미야자와,와타나베는 리크루트 관련자를 슬쩍 내각에 밀어넣음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가이후­오자와(소택) 간사장­하시모토(교본)대장성장관으로 주도되는 「네오 뉴 리더」그룹에 다시 도전해보겠다는 포석도 깔려있다.
특히 차기대권을 노려온 아베의 경우는 더욱 초조감이 강하다.
가이후 총리도 이같은 세대전쟁에 방비선을 치려고 시도한 흔적도 보인다. 같은 와세다대 웅변반출신인 니시오카(서강무부)의 당총무회장 기용이나 한때 관방장관에 자신의 파벌인 고모토(하본)파가 아니라 다케시타(죽하)파의 하타(우전) 또는 미야자와파의 고노(하야양평)를 추천,「약체 최소파벌 출신」인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려한 의도가 엿보인다.
결과적으로 내각구성은 각파벌로부터의 추천에 따라 세력을 안배하는 「파벌균형」선을 벗어나지 못한 인상이 짙다. 이번 총선에서 더욱 세력을 크게 확장한 다케시타파(의원수 1백6명)에 지난번보다 한자리 늘린 6개포스트를 우선 배정하고 아베파(86명),미야자와파(82명),와타나베파(67명)에 각각 네자리,고모토파(33명)에 두자리를 안배했다.
그러나 유임된 외무ㆍ대장성장관자리와 더불어 간판격인 통산장관,그리고 각종 이권과 선거관련 주요 포스트인 운수ㆍ건설ㆍ우정ㆍ자치ㆍ농수장관을 두고는 각파가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이번 제2차 가이후 내각에서 파란이 예상되는 미일경제 마찰을 고려,하시모토대장성 장관과 나카야마(중산)외무장관을 유임시킨 것은 총선전부터 예상된 일로 「외교의 계속성」이 이유가 되고 있다.
가이후 내각이 앞으로 해결해야될 난제도 적지않다. 우선 89년도 보정(추가경정)예산안,90년도 예산안의 조기성립을 위해 권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참의원에서의 야대여소로 국회에서의 파란이 예상되는데다,총선에서 크게 의석수를 늘린 사회당이 소비세 폐지법안을 계속 물고늘어질 공산이 커 야당과의 협력체제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 정국전망은 불투명하다.
특히 3월2일 가이후 총리의 긴급 방미에서 보듯 「위기적 상황」에 있는 미일경제관계의 타개라는 현안이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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