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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3자간 시뢰가 번영 밑거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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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올해 우리의 노사관계는 격심한 갈등의 회오리를 벗어나 점차 진정국면에 들어설 것인가. 최근의 경제침체가 모두 노사문제 때문만은 아니나 높은 임금상승과 분규로 인한 생산차질의 주요인으로 꼽히면서 앞으로의 노사관계진전과 바람직한 산업평화구축을 위해 외국의 경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사관계만큼 사실 각 국의 역사적·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현재 노사안정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제도는 차이가 커도 근로자·기업가·정부가.「한배를 탔다」는 공동책임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주거안정·의료·실업보험등 적절한 사회보장장치도 노사관계의 안정을 구축하는데 주요기반이 되고 있다. 합리적인 임금 가이드라인 실정, 민주적 노사교섭 관행정착등으로 우리에게 모델로 알려진 서독·호주·싱가포르의 최근 노사관계실태를 현장취재로 알아본다. <장성효기자>

<서독>

<기업감사에 노사서 동수 참여>
요즈음 서독에서는 3백90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금속노련이 새로운 단체협약 체결을 놓고 사용자연맹과 줄기찬 논전을 벌이고 있다.
『임금 8·5%인상, 현행 주37시간 근로시간의 35시간으로의 단축』 -.
노조측은 서독 경제가 최근2∼3년 성공적 성장을 이룩 한데다 보다 인간적인 근로환경조성을 위해 요구조건의 관철을 주장하고 사용자측은 임금인상요구도 높지만 생산증대가 중요하기 때문에 근로시간만은 결코 줄일 수 없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단체협약이 만료되는 금년5월까지 노사간의 새로운 협약체결을 의심하는 분위기는 찾기 힘들다. 아무리 입장 차이가 커도 교섭은 민주적으로 진행, 폭력등 불법행위는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독의 노사관계는 선진자본주의국가 가운데서도 가장 안정돼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 예로 서독의 경우 노동손실일수는 지난86년 1만일당3일로 미국 (1천1백86일) 영국 (1백92일) 의 수백분의1에 불과했고 일본 (25일)보다도 적었다.
서독의 노사관계가 이처럼 안정적인 배경은 노사협력을 위한 경영참가제도가 잘 발달된 것도 주요이유로 꼽히고 있다.
지난 51년이후 제정된 공동결정법·경영조직법에 따라 서독기업들은 근로자들의 감사역회 참여와 경영협의회의 구성을 보장하고 있다. 기업의 최고의사 결정기구인 감사역회는 대기업의경우 노사가 동수로 참여, 주요 경영전략, 경영에 대한 감사평가를 하며 경영협의회는 관리·업무적 의사결정에 근로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대우중공업과 기술제휴를 맺고 있는 유를겐 뒌히랑스도르프 사 관리담당이사는『자사의 경우 근로자2명이 감사역회에 참여하고 있다며 분기마다 신규채용·해고등은 물론 경영상황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이 직접 회사경영내용전반을 알게됨으로써 귀속의식은 물론 협조분위기가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또 이 회사의 경우는 지난86년 창립1백주년을 맞아 조사한 결과 전체 1천5백명의 종업원중 25년 이상 근속자가 7백명으로 이중 10%는 50년 이상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어도 일본 못지 않은 종신고용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서독이라해서 노사간의 화평 만이 지속 될리는 없다. 지난 84년에는 금속노조가 쟁의를 일으키면서 1천21개 업체가 파업했고 이후 숫자는 줄긴 했어도 88년엔 42개 업체가 파업, 2개 업체가 직장폐쇄조치를 단행했다. 특히 84년 파업때 금속노련은 5억 마르크를 근로자들에게 파업수당으로 지급, 파업 기금이 동날 정도였다.
무노동무임금원칙이 철저히 지켜지기 때문으로 이후 5년 뒤인 올해는 기금이 어느 정도 적립돼 노조측은 일전을 벌일 각오를 하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파업도 서독의 전체업체 50만개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서독의 노사관계가 안정을 지켜 온데는 사회보장제도의 발달·과 정치 노조등 이념 지향적 노조가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연금·실업·의료보험등이 충실히 갖춰져 실제 실업보험은 실업 후 52주까지 최종임금의 75%정도를 내주고 있다.
정부도 노사관계에가 급적 관여를 않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다. 볼프강 노동부 단체노동법과장은 이에 대해 『노사관계는 당시자가 실태를 가장 갈 알기 때문』이라며『나치체제를 겪은 후 국가의 간섭을 싫어하는 분위기도 여기에 작용하고 있다』고 배경을 밝혔다. 정당과 노조와의 관계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 사민당이 노조에 우호적이긴 해도 독일 노동자총연맹 (DGB) 에는 기민당 인사도 2명이 이사로 참여해 있다.
서독의 경우라고 해서 노사관계의 밝은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는 92년으로 예정된EC(유럽공동체) 통합, 동서독통일은 경제에도 큰 충격파를 던질 것으로 예상돼 사용자측은 그때까지 추이를 지켜보자며 근로자들의 요구를 달래고 있다. 노총쪽에서 이 같은 사용자측의 논리에 펄쩍 뛰고 있으나 경쟁력을 깎아 먹으면서까지 요구를 증폭시킬 분위기는 아니다. 전 후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오면서 굳어진 성숙한 노사협조관계, 여기에 독일특유의 민족 우선주의적 의식이 오늘의 서독 노사안정의 기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주택융자등 복지 시책에 역점>
『지난 77년 이후 회사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노사가 그만큼 협조를 잘해온 결과라 생각된다』
싱가포르에서도 비교적 큰 기업인 종업원 9백50명의 메탈박스사. 이 회사의 광칭젠 사장은 자랑삼아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분규가 없기는 메탈박스사 뿐만 아니다. 통계를 보면 86년 1건을 제외하고는 초년이후 싱가포르에서 분규가 일어난 적은 없다.
싱가포르의 국가임금위원회(NWC)는 신흥공업국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소득정책에 성공한 사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72년 설립된 국가임금위원회는 노총(NTUC)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 싱가포르의 노사안정을 도와왔으며 특히 지난85∼86년 불황으로 마이너스성장의 위기에 처했을 때는 86∼87년 2년간 임금을 동결, 경제안정에 결정적 기여를 해봤다.
싱가포르경제는 이때 각계전문가로 구성된「경제위원회」가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혁과 첨단산업·금융산업 육성정책을 아울러 촉구, 이를 시행해온 결과 88년부터는 경제가 완전 회복단계로 들어서 88년 11·3%, 89년 9·3% (추정) 의 괄목할 성장을 이루는 성과를 기록했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안정된 노사관계는 정부의 직접적 개입에 바탕을 두고있다.
지난59년 현 인민 행동당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만 해도 좌파노동세력이 우위를 점했었다. 이런 상황 속에 말썽 있는 노조의 등록취소등 행정력을 동원해 반대세력을 제거, 현재의 노동조합연맹 (NTUC) 를 대체세력으로 키워온 것도 정부였다.
싱가포르는 지난68년 고용법·노사관계법을 제정, 그 뒤 몇차례 개정을 해 왔지만 단체교섭대상을 제한하고 이익분쟁에 강제중재제도를 도입 하는등 현재까지도 노동운동에 상당한 통제를 가하고 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는데는 이러한 정부의 노동정책이 큰 작용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외국기업의 투자유치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싱가포르는 노사관계 불안정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다.
류풍기 노총국제담당사무차장은『근로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자리다. 그러자면 외국인 투자를 유인하는 환경조성이 절대적이다』고 밝혔다.
이 같은 싱가포르의 노동정책은 국가임금위원회의 사용자측 대표중 일본상공회의소·독 일경영자 단체등 외국투자기업 인사들도 상당수 포함된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임금등 노동정책결정에 투자기업의 입장을 반영해 주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노사안정이 정부주도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근로자들의 소득향상에 노력해온 결과 노·사·정 3자간의 두터운 신뢰기반을 쌓아가고 있다.
피터승 메탈박스사 노조조합장은 이와 관련해 『근로자의 우선적 관심이 임금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생산성을 뛰어넘는 임금인상은 인플레와 경제혼란을 초래, 자신들에게도 실익이 없다』며 『국가 임금위원회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가 노사안정을 이루는데는 꾸준한 복지시책도 한몫을 하고있다.
지난 55년 설립된 중앙연금기금(CPF)은 근로자들의 아파트 구입때 융자는 물론 퇴직금·의료비를 지급하고 있으며 경제가 어려울 때는 정책수단으로 이용, 지난86∼87년에는 기업의 코스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업 기여금을 25%에서 10%로 낮추기도 했다.
이와 함께 노총도 슈퍼마킷·보험회사·탁아소운영등을 통해 근로자들의 실질적인 생활향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싱가포르의 노사안정은 권위주의적 정부의 강력한 주도로 이끌어지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도시국가라는 특수 상황속에 생존을 위한 국민들의 단합의식, 사회복지시책등이 이러한 노사안정에 밑받침을 이루는 것도 사실이다.

<호주>

<정책 결정할 때 노조의견 수렴>
『조종사들 최고 6백50만 (호주) 달러 배상직면』
지난9일자 호주 파이낸스 리뷰지는 작년 8월22일 시작된 호주국내선 조종사 파업의 관계기사로 법원의 심리결과를 이렇게 보도하고 있었다. 호주국내항공교통을 거의 4개월간 마비 시켜오다시피한 조종사파업. 이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항공등 국내4개항공사가 그동안 결항등에 따른 손해배상을 조종사노조연맹에 청구, 그 재판이 마무리단계에 들어가면서 나타난 기사내용이다.
호주의 노사관계는 지난83년 노동당집권이후 지속되고 있는 사회합의(Sdcial Accord)가 그 근간을 이루고있다.
호주는 정확히 73∼74년, 81∼82년 경기과열로 근로자의 배분요구가 폭발, 임금폭등에 악성인플레가 만연했으며 이후 정부의 긴축정책과 반인플레정책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대량실업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호주노총(ACTU)은 가격·임금·세제 개혁등을 내용으로 하는 소득정책을 제안, 즉 노조는 실질임금증가의 완화나 때에 따라선 저하를 감수하는 대가로 정부는 사회보장 혜택을 확대하며 소득세를 감면해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등 일련의 타협정책을 실시할 것을 촉구, 현재까지 협조관계가 유지되어 오고 있다.
근로자들은 오랜 대립의 경험 속에 실질임금의 확보와 생활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인플레를 유발시키는 성장과 노사분규를 통한 요구해결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던 것이다.
실제 그 이후 호주경제는 안정을 되찾아 83∼88년간 4·5%의 높은 경제성장에 실업률은 83년 10·1%에서 89년에는 6·1%로 감소했고 노조가 임금등 정책결정에 참여함으로써 노사분쟁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적인 노사관계도 최근에는 부분적인 균열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호주의 단체협약은 중립적인 노사관계위원회(IRC)가 노총등과 사용자의 의견을 수렴,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안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작년 이후 엔 분쟁이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섰고 국내선조종사파업도 이들이 30%의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 이를 용납했다간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예상한 정부가 대량 해고조치등 강경책을 단행, 수습한 것이다.
여기에 외채누증등 그동안 쌓인 경제현안도 노사관계에는 불리한 작용을 하고 있다. 호주는 소비가 1%증가하면 수입이3%늘어나는 경제구조 속에 과열경기로 경상수지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 순 외채만 1천억 달러를 웃돌고 있다. 이 같은 난제를 해결하려면 국내초과 수요억제 임금동결등을 단행해야 하는데 근로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내핍을 호소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사실 대처 영국총리가 영국 명으로 통칭되는 불안정한 노사관계를 강경 대응으로 극복했다면 호주는 노동운동세력을 정책결정과정에 참여, 협조케 함으로써 드물게 노사안정을 이룩한 나라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지난 72∼75년 노총위원장을 지냈던 호크 현 총리가 경제를 제대로 꾸려나가려면 노조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다는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권과 노조의 긴밀한 협조가 지금은 노사안정의 버팀목이 되고 있으나 뒤집어 보면 불안요인이 되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맨스필드 노총사무차장은 정권이 바뀌었을 경우 노총의 입장에 대해 『현 자유당은 기업가의 권익을 우선해 정책을 수립하기 때문에 사회협약은 유지되기 어렵다』고 분명히 잘라 말했다.
백호주의의 청산과 함께 과감한 개방으로 개혁을 추구해 나가고자 하는 호주에서도 노사 문·제는 여전히 부딪쳐가면서 해결해 나가야할 숙제로 남고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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