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객원의학전문기자의우리집주치의] '된장녀'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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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된장녀'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허영심으로 가득 찬 여성을 빗댄 신조어라고 합니다. 겉멋으로 서구 문화를 즐기고 명품만 찾으면서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요즘 여성의 세태를 겨냥한 것이겠지요. '된장찌개나 먹는 주제에 무슨 명품 타령이야'란 비아냥거림이 물씬 느껴집니다.

요즘 여성이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허영심 많은 여성을 표현하는 데 된장을 갖다 붙인 것은 대단히 유감입니다. 천부당 만부당한 용어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1995년 세계 최고의 병원으로 알려진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을 취재차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전립선암 수술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비뇨기과 패트릭 월시 교수를 만났습니다. 한국에선 드문 전립선암이 왜 미국에선 흔한지 물어봤습니다. 전립선암은 미국 남성들에게 가장 흔한 암입니다. 6명 중 1명이 걸릴 정도지요. 그가 내놓은 답변은 의외였습니다. 'miso(된장)'였기 때문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전립선암이 드문데 여기엔 된장 같은 콩 발효 식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2003년 일본 국립암센터는 된장이 유방암을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일본 여성 2만여 명을 10년간 관찰한 결과입니다. 된장국을 하루 한 그릇 마시는 여성에 비해 세 그릇 마시는 여성은 40%, 두 그릇 마시는 여성은 20%나 유방암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된장 섭취량과 유방암 발생률이 정확하게 반비례한 것이지요.

안타까운 것은 서구에서 주목받는 된장이 정작 된장녀 사례에서 보듯 우리 땅에선 푸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된장 섭취량도 나날이 줄고 있습니다. 메주를 쒀 된장을 담가 먹는 집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패스트푸드에 길든 우리 아이의 입맛은 된장을 거부하는 쪽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한 식품회사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된장 먹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된장을 거부한 결과는 이미 눈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방암은 위암에 이어 여성에게 둘째로 흔한 암으로 올라섰습니다. 이 추세를 방치하다간 여성 8명 중 1명꼴로 유방암에 걸리는 미국처럼 될지 모를 일입니다. 희귀 암으로 알려진 전립선암도 최근 수년 새 급증해 남성에게 아홉째로 흔한 암으로 등장했습니다.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증가엔 된장 소비량의 감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봅니다.

된장은 결코 고리타분한 식품이 아닙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실속 있는 우리 고유의 명품 식품입니다. 건강을 위해 된장을 많이 먹어야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너무 짜지 않게 드시기 바랍니다. 짜게 먹을 경우 고혈압과 위암 등의 질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홍혜걸 객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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