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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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근 사업차 미국·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가스를 비롯, 서부전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매번 해외여행 때마다 용무가 바빠 별다른 느낌을 가질 수 없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미국 어느 지역을 가도 도로마다 일제 차로 뒤덮여 있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실제 미국시장 점유율이 60%가 넘는다고 했다·그러나 한편으로 아쉽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점은 국산 차가 미국에 진출, 성가를 올렸다고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단 한대밖에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서운한 것은 50만 명이 넘는 한국 교포들 중 국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만났다는 점이다. 국산품에 대한 교포들의 애착이 아쉬웠고 일본인들의 저력을 새삼 느끼는 동시에 노사분규로 한동안 곤란을 겪었던 국내업계가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또한 미국인들의 교통문화에 대해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잘 정비된 도로망 및 교통표지판은 물론 우리 나라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차선 바꾸기, 차선·신호위반, 난폭 운전 등은 전혀 없고 질서정연한 운행모습은 우리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러한 선진풍토에 잔뜩 기죽어 있는 판에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친지이야기는 그나마 있던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허물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외국에 나와서도 전라도니, 경상도니, 이북5도니 하여 서로 배척하며 갈등과 대립을 해소 못한 채 싸움을 벌이기 일쑤라는 것이다. 심지어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장이 전라도 출신이라 로스앤젤레스에는 전라도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말이 돌고 있다.
뿌리깊은 지역감정이 머나먼 미국 교포사회에서까지 고질화돼 있다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 스러웠다.
귀국 길의 비행기 안에서 본 한국인의 모습도 그렇게 한심할 수 없었다. 너나할 것 없이 양주 2병과 양담배를 몇십갑씩 사는 것이었다.
외국에선 상류층 인사들은 자기나라 담배나 술만을 즐긴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 엘리트 계층은 아직도 양주와 양담배를 신분과시용으로 삼는 일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실제로 양주판매량이 해마다 폭증하고 양담배 점유율도 지난해 4.5%로 전년대비 두 배나 뛰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여행에서 느낀 속 좁고 못난 한국인들의 면면을 지금까지 지울 수 없었다. 기업인들은 더욱더 분발하고 정치인들은 정국안정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사소한 지역감정에 얽매이거나 양담배나 피우며 신분을 과시하는 구태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할 때다.

<서울서초구방배 1동 865의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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