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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혁명을 보고 싶다/차하순(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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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혁명에는 항상 인명의 살상,재산의 박탈,파괴 등 폭력적 과정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에대한 거의 유일한 예외는 1688년의 영국혁명이었다. 이 혁명은 역사적으로 명예혁명이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두드러진 살상과 파괴없이 절대군주가 물러났을 뿐 아니라 인간기본권을 증진시키는 정치적 구조의 일대 혁신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금의 동유럽 여러나라는 루마니아를 제외하고는 군민간의 큰 충돌이 없고 폭력의 정도가 미미한 가운데 정치적 대변화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가위 명예혁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혈없는 혁명­ 그것은 혁명적 변화는 원하되 그 방법으로서는 가급적 폭력은 피하겠다는 대상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우연 아닌 동구 변혁
물론 이러한 유혈없는 혁명이 우연의 산물일 수는 없다. 공산당의 일당독재,언론출판의 통제,개인생활의 다양성이 기대될 수 없는 획일적인 집산적 경제체제 등을 통한 오랜 탄압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나라들의 정권은 이미 속으로 썩었고 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촛불에도 쉽사리 타버릴 볏짚인형일는지 모른다.
일부 사람들은 1989년 혁명을 1848년 혁명과 비교하는데 사실상 이 두 혁명사이에는 비슷한 점들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두 혁명은 다같이 자유의 회복을 위한 혁명이었다. 1848년 혁명은 나폴레옹 후에 수립된 반동협조체제의 탄압적 조치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저항이었으며 1989년 혁명 역시 동유럽인들이 공산주의의 획일적 체제에 대해 민족적 자유를 주장하는 운동이었다.
1848년 당시 독일의 한 시인이 『군주는 아직 살아있으나 군주제는 죽었다』고 말했는데 1989년 혁명에 대해서는 『공산당은 아직 있으나 공산주의는 사라져가고 있다』고 표현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1848년은 획기적인 해였다. 자신의 여생에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마르크스는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여 국제공산주의시대의 막을 올린 셈이었다. 그에 의하면 세계사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혁명에 직면할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결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산업발전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님은 그 후의 역사과정에서 반증되었다. 역사는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반대로 진전되었고 「공산당 선언」 1세기 후에는 최선진 산업국가들은 도리어 공산주의의 위협을 가장 덜 받는 나라가 되었다.
1848년 혁명과 1989년 혁명간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1848년 혁명이 바리케이드와 시가전의 혁명이었는데 반해 1989년 혁명은 플래카드와 촛불의 혁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유혈이 낭자한 전투적 수단에 호소한 1848년 혁명은 실패한 반면 촛불행진과 같은 평화적 시위에 의존한 1989년 혁명은 성공했다.
그것은 조용한 혁명이요,유혈없는 혁명이었다. 레닌은 엘리트의 집권을 통한 사회재건을 목표로 하는 폭력혁명을 제창했으나 오늘날 동유럽의 일반대중은 혁명의 수단 그 자체에 대해 하나의 혁명을 일으킨 셈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조용한 혁명은 있을 수 없는가. 1987년 6월 이래 우리 사회가 역사적 대전환을 모색해온 것은 사실이다.
○평화적인 혁신 원해
6ㆍ29선언에 대해서는 구구한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그 핵심은 간단하다. 즉 국민 대다수가 6ㆍ29선언을 받아들인 것은 한편으로 민주적 일대 혁신을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평화적 방법에 의한 변화가 되기를 바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후 2년동안 여러가지로 조사된 여론에도 반영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국민 대다수는 한국 현대사의 유산인 독재와 부패를 청산함에 있어 혁명적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대했고 이와 동시에 제도적 장치를 통한 사회적 안정을 요구했었다.
여기에 일견 역설적인 국민적 요청이 있다. 즉,우리 사회의 지배적 여론은 혁명적 변화를 위한 요청과 비혁명적 방법에 대한 요청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 아닌 혁명은 우리나라 정치가 어느 만큼 빨리,그리고 확고하게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6ㆍ29선언을 발표한 당사자들이나 그것을 받아들인 국민이 다같이 선언 당시의 혁명적 상황과 비장한 결의를 되새겨 그 정신을 준수할때 비로소 조용한 혁명은 완결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한편에는 보수적인 현상유지 세력이 있고,다른 한편에는 급진적 변혁만을 고집하는 세력이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수신당의 결성이나 여야 정치인들의 우왕좌왕이 즉각적으로 새 정치로 연결되기 어려운 것처럼 화염병 투척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과격수단이 곧 혁신적 사회변화에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선 한국사회는 새로운 정치적 구도에 의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변화가 단순히 인물들의 재배치와 권력체계의 재편성만으로 가능하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 정치에 필요한 것
필요한 것은 유능하고 성실한 민주적인 정치가들의 출현과 함께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정책수립과 부패ㆍ부정이 없는 효율적이고 봉사적인 행정등이다.
우리의 관심은 정치인들의 당파중심의 이합집산이라는 현상적 사건들에 있지 않으며 과연 우리나라 정치가 이제부터 근본적인 혁신을 위한 구조적 변화를 하겠는가에 있다.
한마디로 유럽혁명에서와 같이 과격한 폭력적 수단을 회피하면서도 진정코 혁명적 변화가 올 것인가는 90년대의 한국 정치에 대한 가장 커다란 국민적 관심이 아닐 수 없다.〈서강대 부총장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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