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야놀자] '무늬만 배당주' 생긴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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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대형주 위주로 운용하는 펀드는 운용 규모가 크든 작든 별로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중소형주에 투자하는 펀드는 운용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곤란합니다. 예컨대 탁구공 20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다고 칩시다. 붉은 공은 10개밖에 없는데 붉은 공으로만 그릇을 다 채우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붉은 공이 아닌 다른 색 공까지 섞어야 합니다. 펀드도 이와 같습니다.

2004년엔 배당주 펀드가 고수익을 내며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투자 자금이 쇄도하자 운용사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금을 더 받으면 배당주 펀드 색깔이 퇴색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배당주 펀드를 운용하던 많은 운용사들은 결국 몰려드는 자금을 다 받아 무늬만 배당주 펀드로 전락했습니다. 배당주가 아닌 일반 주식을 많이 사들이다 보니 실제 투자한 종목들의 배당수익률이 일반 주식펀드와 다를 바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이런 펀드들은 운용 규모가 증가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내게 됩니다. 하지만 자금 유입이 중단되면 투자한 주식 가격이 정상을 회복하게 되면서 펀드 수익률도 하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테마 펀드들은 펀드 자금의 추세를 잘 살펴야 합니다. 성격이 유사한 다른 운용사의 펀드들도 함께 관찰해야 합니다.

투자 종목의 환금성과 유동성이라는 관점에서 최대 규모가 중요하지만 '전략 구사'라는 측면에서는 '최소' 규모도 중요합니다. 특히 채권펀드는 500억~1000억원은 돼야 독자적인 운용전략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채권시장의 단일종목 거래규모가 100억원이기 때문입니다. 운용사 내에 유사 전략을 구사하는 다른 채권펀드가 존재한다면 펀드 규모가 50억원이라도 운용상 큰 무리는 없습니다. 다만 단일펀드로 독자적 운용 전략 구사는 포기해야겠지요.

주식 펀드의 적정 최소 규모는 10억원 전후로 채권펀드에 비해 작습니다. 주식펀드는 1억원만 넘어도 이론상 독자적 운용이 가능하고 실제로 많은 펀드들이 정상 운용을 하고 있습니다.

최상길 제로인 상무 (www.funddoc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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