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의 집안단속/박보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요즘 평민당 총재실과 총무실의 주요업무중 하나가 당내 소장의원들의 동향파악이다.
소장의원중 누가 야권통합파 대열에 끼어들까 예의 관찰하고 있으며 조윤형부총재등 중진급이 여기에 편승할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평민당내 통합파로 꼽을 수 있는 의원은 이상수ㆍ이해찬ㆍ양성우 3인이다. 그외 온건보수 소장파의 박실ㆍ김종완의원이 공식회의석상에서 통합의 원칙적 찬성발언을 했고 이철용의원등이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정도다. 야권통합의 상대편 대상인 민주당에 비해 아주 미미하다.
당내 공기도 비할 바가 못된다. 김대중총재가 4당체제의 상대적 긍정론ㆍ국민선택론을 들어 정계개편ㆍ야권통합에 「불가」 딱지를 붙여놓은 탓인지 「어디감히…」 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다 총재측근에서부터 집안단속이 심해지고 있어 소장파의원끼리의 단순한 저녁식사 자리도 눈치보인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하긴 이달 첫 주말 초선의원 12명이 가족들을 데리고 1박2일 제주도 여행을 가려다 통합단합모임이란 구설수가 일고 총재실 주변 중진들의 따끔한 충고 때문에 5명이 포기,비행기표 예약을 취소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주도를 찾은 의원은 통합파 3명에다 박석무ㆍ조홍규ㆍ김영진의원 등이었는데 한 의원은 돌아와 『정치도 중요하지만 자녀들과의 한라산 구경 약속도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뺏다.
당내 단속이 심해지자 소장의원들은 눈에 띄게 움츠러 들고 있다. 호남에서 당선된 의원들은 아예 통합소리를 입에 담지 않으려 한다. 통합파와 어울리다간 지역구 주민들로부터 『선생님(김총재) 노선에 충실하라』는 경고전화를 받기 일쑤라는 것이다.
반대로 서울출신 의원들에겐 격려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한다. 『상당수가 통합론의 심정적 동조자다. 그러나 통합추진 이유의 하나인 지역당 현상이 바로 통합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소장파의원들은 푸념하고 있다.
지역중심의 4당체제 정치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무성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소리는 미약한 게 평민당의 실정이다.
『지역주의에 입각한 카리스마적 체질을 개혁하기 위해서도 통합은 추진돼야 한다』는 통합파의 외침이 지역당의 틀속에서 공허하게만 들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