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춘<태백도서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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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이 민족문제로 진통하고 있는 소련내 리투아니아를 방문한 모습을 12일 저녁 TV를 통해 지켜보고 부러운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수만명에 가까워 보이는 군중 속을 차를 타고 가다 내려 차 앞에서 시민들과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나 서로의 흉금을 털어놓고 언성을 높이는 토론 내용등이 모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르바초프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련이라는 거대한 전체주의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아니었고 언제나 접근하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보도된 대화내용도 최고지도자와「인민」의 대화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히 자기 주장을 펴고 서로의 이해를 구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모습을 보면서「역시 고르바초프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정치지도자들은 왜 저러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여야지도자 모두 문제가 생기는 곳을 찾아가기 보다 비켜가기 급급한게 우리 지도자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의 경우 자기 스스로 대통령선거 공약에서 시민들과 현장대화를 많이 갖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 취임 이후 한번도 문제가 발생한 현장에서 이해당사자들과 직접 대화한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
노사분규로 한 도시 전체가 최루탄으로 범벅이 돼도 정치지도자가 찾아와 이해를 구하고 대화하기는 커녕 진압경찰만 증파되기 일쑤였다.
소련이란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그러는데 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가. 정치철학 부재에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없어서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도자들을 모시는 측근들도 그저 자기 지도자들이 망신이나 당하고 봉변이나 당할까봐 급급할 뿐 어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만남의 양을 마련해주지 못하는가 묻고싶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제시하는 것들이 언제나 미봉책으로 끝나고 문제가 되풀이 되지 않는가.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고르바초프의 모습을 다시 한번 지켜보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할것이다. <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4동 15통2반 가릉연립다동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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