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영화의 적이요, 드라마의 친구 '스포일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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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요즘 영화기자들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는 스포일러와의 싸움입니다. 스포일러는 아시죠? 내용이나 결말을 미리 알려서 영화 보는 재미를 크게 떨어뜨리는 사람이나 그런 정보를 말합니다. 막판에 반전을 숨겨놓았거나 관객과 지적인 게임을 벌이는 영화일수록 스포일러는 치명적입니다. 요즘 영화들이 반전 충격효과를 노리거나 비밀주의 미케팅을 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스포일러는 영화계의 '공공의 적'이 됐습니다.

그런데 기자 입장에서는 이 스포일러가 '쥐약'입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려 '따귀'빼고 '기름'빼다 보면 기사 자체를 쓰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스포일러는 절대 안 되지만 단서와 암시로 정보를 충실히 주어야 한다는 딜레마지요. 사실 요즘은 일상에서도 영화를 볼 사람들에겐 줄거리를 말하지 않는 게 예의이니 마냥 푸념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유로운 인터넷 관객 평에도 '스포일러 만땅''스포일러 유의' 등의 단서 달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더라고요.

이런 스포일러 피하기가 관행이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입니다. '올드보이'(2003)가 기점입니다. 배우.스태프 계약 당시 결말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아 입단속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후로 숱한 영화들에서 누가 귀신이고 범인인지 말하지 않기가 기자와 관객들의 '자기 검열' 사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식스 센스'(1999) 때만 해도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라는 것을 노출한 기사가 많았으니, 격세지감입니다.

사실 더 흥미로운 것은 왜 유독 영화에서 스포일러가 문제 되느냐는 겁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TV 드라마의 경우에는 아예 다음 회 예고가 프로의 일부로 자리 잡았는데 말이죠. 드라마 예고편은 다음 회의 '앙꼬'들을 다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오히려 관객을 유인하지요.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자기 돈 내고 한 번 보는 영화와 공짜로 연속 시청하는 TV 드라마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TV 시청자가 스포일러를 전혀 개의치 않으며, 이미 아는 내용을 확인하면서 그것을 본다는 것은 TV 시청의 본질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마치 질 낮은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것처럼 말이죠. 다시 말해 TV 시청은 기본적으로 '일상의 흐름'으로 체험된다는 기본 명제를 재확인시킵니다. 특정 드라마 자체에 대한 만족도보다 '10시 드라마 시간대=휴식 시간대'로 습관적으로 TV를 켜는 일상의 흐름이 TV 시청의 더욱 강력한 요인이라는 얘깁니다.

'미끼'가 되고 또 '쥐약'이 되는 스포일러는, 그렇게 영상 소비자들과 '마음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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