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핫뉴스] 혼돈 속에 빠진 대통령 '재신임' 政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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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잇단 ‘재신임’ 관련 발언이 사이버 공간에서도 핵폭탄급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혼돈 속에 빠진 ‘재신임’ 정국에 대한 반응은 오프라인과 큰 차이가 없지만, 정국을 해석하는 네티즌 특유의 풍자 어법이 치열한 논쟁 속에서 숨통 역할을 해주고 있다.

'국가=한 가정'으로 보는 인식이 가장 눈에 띈다. 아이디가 'gadgett'인 네티즌은 盧대통령의 발언을 '바람피운 아내의 도박'에 비유했다. 결혼 후 시댁 식구는 물론 친정과도 불화를 일으키는 데다 넉넉한 월급은 아니지만 뭘 하는지 살림살이는 엉망이고 이웃과도 사이가 안 좋던 아내가 바람까지 피웠다.

그런데 들통난 아내가 오히려 "이혼하려면 해. 네 뜻대로 하겠어"하고 선수치는 격이란 얘기다. 그는 이런 盧대통령을 그대로 둔다면 남은 4년 동안 몇 번이나 국민투표를 할지, 어떤 돌출 행동을 할지 걱정된다면서, "차라리 너무 늦기 전에 저런 여자와 이혼해야 하듯이 대통령과 이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결론지었다.

반면 盧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은 한나라당 측의 대응을 '× 싼 사람이 × 밟은 사람 나무라는 셈'으로 표현했다. 차혁준이라는 네티즌은 "×을 싸놓고 밟기만 기다리는 사람이 더러운가, ×을 밟은 사람이 더러운가? 당연히 밟은 사람이 더럽고 냄새도 밟은 사람한테서 더 난다. ×을 싸놓고 밟기만 기다린 사람보다 ×을 밟은 사람에게 책임을 따지는 것이 여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밟은 ×도 밝히고 싸놓은 ×도 밝힐 수 있도록 국민이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맑고 투명한 정부를 실현시키자"며 盧정권 지지를 호소했다.

대중문화 향유 세대답게 20, 30대 네티즌은 현 정국을 콘서트에 비유하기도 했다. 'motor88'은 "한국은 盧대통령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돈 내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콘서트를 취소하고 입장권 산 돈도 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표를 구입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면서 "이제까지 계속 어느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쇼맨십으로 하루하루를 넘겨왔지만 이번의 재신임 발언은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너희 마음대로 해라, 나는 막간다는 식"이라고 비난했다.

'avotre'는 "지금 우리는 국민 앞에서 여의도 노래자랑을 하는 정치판을 시청하고 있다"고 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립싱크 가수에 대해 2위를 한 립싱크 가수가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자 1위 가수가 "그럼 라이브로 다시 평가받자"고 제안하는 상황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현 시국에 대해 긍정적이다. "음악팬의 입장에서 조금은 혼란스럽지만 그들이 선의의 라이브 경쟁 무대를 열겠다 하니 립싱크 음악보다는 훨씬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음악팬의 입장에서도 절대 반대할 부정적 경쟁 무대는 아니지 않은가 싶다"는 이유다.

이 밖에 "내 탓이라며 가슴치며 고해하듯 시작된 재신임 문제가 이제는 네 탓이라고 언성을 높여가고 있다"면서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을 인용해 盧대통령을 점잖게 질책한 네티즌도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뿌리까지 뽑힐 위험을 놓고 어찌 바람 탓만 하고 있겠는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원인은 그 나무나 주위 토양에서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용비어천가는 예부터 이렇게 노래하고 있나 보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truewon)

김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