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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부산·경남 찍고 서울로 '아파트 작은 거인'이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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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사진=박종근 기자

"아파트 사업은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공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주택업자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평생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일신건설산업의 권혁운(57.사진) 회장은 요즘 집 짓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어렵사리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기뻐하는 입주민들을 지켜보면 허투루 집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이 회사의 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1년 새 껑충 뛰었다. 지난해 127위에서 올해 75위로 52계단이나 올랐다. 2004년(300위)과 비교하면 2년 만에 무려 225계단이 뛰었다. 권 회장은 "성적(시공능력 순위)이 오르고 덩치가 커진 만큼 집을 더 잘 지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그만큼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견본 주택이 마음에 안 들면 개관일을 늦춰서라도 현장에서 이곳저곳을 뜯어고친다. 견본주택은 주택건설업체의 얼굴이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일신건설산업 권혁운 회장

'주부를 아는 건설사 입소문 덕 크게봤죠'

보증 잘못서 온집안에 빨간 딱지
독한 마음먹고 악착같이 회사 일궈
건설+금융 합친 한국형 모델 구상

일신건설산업의 권혁운 회장의 꿈은 전문 금융인이었다. 1974년 대학을 중퇴한 그는 일본 유학준비를 마치고 출국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출국일 앞두고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문세광 사건'이 터져 그의 진로가 확 바뀌고 말았다. 일본과 단교 직전까지 갈 정도로 한.일 관계가 나빠져 일본 정부는 이후 3년간 한국 유학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던 권 회장은 "잠깐만 다니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재미도 있고 성취감도 높았다고 한다. 대한조선공사 계열의 옥포기업 등을 다니는 동안 승진도 남보다 빨리 했다.

30대 초반에 당시 경남지역 1위 건설업체인 신동양건설의 임원으로 스카웃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권 회장은 "당시에는 일에 파묻혀 살아 통행금지시간을 넘겨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도 많았다"고 말했다. 신동양건설을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하던 80년대 중반 권 회장은 큰 시련을 겪는다. 신동양건설이 부도가 나 연대 보증인으로 이름이 올랐던 권 회장은 어릴 딸의 책상에까지 빨간 차압 딱지가 붙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권 회장은 "건설업체가 망하면 먼지밖에 남는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창업하면 절대 부도나지 않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일신건설산업의 재무상태가 건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납입자본금 50억원에 불과한 회사지만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납입자본금의 12배가 넘는 601억원을 올렸다. 가능하면 빚을 안져 부채비율도 106%에 불과하다. 회사가 탄탄해지자 시공능력 순위는 가파르게 올랐다.

권 회장은 창업초기인 80년대 후반 빌라건축 사업으로 기반을 닦았다. 부산에서 잘사는 동네로 꼽히는 해운대구 달맞이 고개에 고급빌라를 지었다. 잘 지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불티나게 분양됐다. 그 때 부산지역 방송들은 이 빌라가 '초호화'로 지어졌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오히려 일신 빌라의 지명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서울 방배동과 양재동에서 분양한 고급빌라도 대성공을 거뒀다.

권회장은 "당시 고급 수요층을 중심으로 빌라붐이 크게 일었는데 이 흐름을 제대로 읽은 게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90년대 초반 지방에도 아파트 건설 붐이 일자 권 회장은 발빠르게 아파트 쪽으로 사업의 방향을 틀었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일신이 재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경쟁업체들이 자금이 쪼들려 포기한 아파트 사업지를 사들여 사세를 키웠다. 회사 덩치를 키우기 보다는 내실을 다진 결과였다. 이 회사가 짓는 아파트는 특히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다. 일신이 짓는 아파트에는 다른 아파트보다 수납공간이 많아 그렇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는 요즘 사업무대를 서울 등 수도권으로 확대하고 있다. 5월 수도권 진출 첫 프로젝트인 화성 향남지구 분양도 성공적이었다.

일신은 앞으로 수도권 사업 비중을 60~70%까지 높일 계획이다. 권 회장은 건설과 금융이 결합된 한국형 건설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한다. 그는 "부동산펀드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사업자금을 마련하고, 사업의 과실을 투자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업모델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글=함종선 <jsham@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일신건설산업은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사업을 벌이는 업체다. '님(林)'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경남권에서 인기를 끌었고 올 4월부터는 '에일린의 뜰'로 브랜드를 바꿔 수도권 주택시장에도 진출했다. 규모는 작지만 알뜰한 성과를 내는 회사다. 직원 1인당 영업이익(2005년)은 7억5600만원이다. 우량 금융업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경영성적표다. 부산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는 "일신건설산업은 사업을 많이 벌이지 않으면서도 수익을 많이 내고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게 집을 설계 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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